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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하 시인 / 검(劍)의 노래
너무 많은 날들이 흘러가 버렸다
어느 늦은 밤의 사막에서, 시간의 모래 冊의 언덕 아래 오래 감추어둔 劍을 꺼내다 단단한 검집 속의, 여전히 살아 있는 고요의 날, 저 형형한 눈빛의 숨 앞에 다시 무릎을 꿇는다
검과 나 사이, 적막과 적막 사이, 시를 죽이고 시를 살 듯 오래전 와디로 흐르던 먼 기억의 상처가 상처를 봉합하듯 거친 모래 책장을 거듭 넘긴다
한 시대가 저물고, 번번이 天命을 거스르던 무수한 밤들이 무참히 지나가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양날의 검의 運氣만으로도, 기어이 상대를 죽일 수도 살려낼 수도 있음을 알아버린지 오래,
다시는 피로 몸을 씻기 싫어 나는 나를 오래 묻어 두었다,
한쪽 어깨를 잃는 증표로 번개문신마냥 다시 상처가 새겨지던 밤, 반나마 타버린 책의 갈피에 혀를 묻던 날이 지나가고 반생의 내공이 한순간에 무너지던 야래향의 밤도 지나가고, 나는 나를 잊었노라 취생몽사의 밤 지나가고 지나가고
내 해골에 입 맞추고 다시 일어서는 밤,
사막의 달 아래 홀로 추는 검사위, 마침내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고요의 날개를 화알짝 펴는 달빛 神劍
우주의 가락으로 춤사위를 펴는
여종하 시인 / 시월에게
애인이여 내가 부른 병(病)이여 이제는 아프지도 않으나 치료할 약이 없는 세월이여 세월의 치정(痴精)이여 더는 내줄 것 없어 무릎걸음으로라도 기어가 입 맞추던 냄새나는 치부(恥部)여, 욕지기여 죽어도 죽지 못한 비애여 목숨보다 징한 그리움의 유적이여, 유폐된 채, 쓸쓸히 미쳐 가는 다시 시월이여 따뜻한 피 한 사발 먹고 싶은! 욕되게 보고 싶은 더러운 순정이여 다시 병이여 천형(天刑)의, 시(詩)여
여종하 시인 / 강가강에 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낯설고 먼 곳으로 두려움처럼 떠나왔던가, 내가 그대여라고 부르며 손 내밀거나 머물렀던 자리마다 악취로 썩어갔던가 내가 병(病)이고 독(毒)이었던가 그러나 다시 연민이여,라고 부르면 문드러져 툭 떨어진 손가락이거나 발가락을 뒤에 남기고 붙잡는 이 아무도 없던 세상과의 지독한 결별을 떠올리며 죽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떠나왔던가 죽음보다 멀리 혹은 죽음 언저리 저물어가는 강가강(江)을 배회하는 저 개들 입가에 피를 묻힌 저 비루먹은 개가 나였던가, 저 눈빛 속의 나 죽음보다 깊은 상처의 우울은 광기와 분열을 지나 내가 낳은 아이 또한 길 위에 버려두고 망 연 자 실 넋 나간 날들을 지나, 낯선 길 위에서의 잠 다시 돌아가 몸 누일 집은 간 곳 없고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서성이는 개, 다 버리고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시(詩)마저 간 곳 없는 낯선 길 위에서 독한 쓸쓸함의 허기는 이빨을 드러내고 내 살점을 내가 뜯어먹으며 내 뼈다귀를 입에 문 채 문득, 저물어가는 강가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 나도 저들처럼 강가강에 죄 씻듯 나를 씻으면 정화될 수 있을까 죽음을 마시고 새로 몸을 얻는 몸이 될 수 있을까 모독처럼 문드러지기만 하는 세월의 문둥병도 다 나아 늦었지만 우리 화해하자며 새로 시작하자며 내가 먼저 세상에 반듯한 손 내밀 수 있을까, 도무지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나는 배낭 속의 해골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두워진 강가강 위로 무슨 알지 못할 눈물 같은 그리움이 한 점 꽃등(燈)으로 흐르고
*강가강: 갠지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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