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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 시인 / 어느 가족
그 집 식탁과 밥상은 높낮이가 참 다양하다.
식구들의 자세는 제각각이었고, 조금 이상하지만, 자유로운 분방함이 별미의 반찬처럼 언제나 거기 곁들여졌다.
일용한 양식은, 그 삐딱한 자세들만으로 이미 충분한 어떤 것이었다.
어느 저녁, 사람들 앞에 전시품처럼 진열된 그들은 식은 국처럼, 풀이 죽었다.
심리분석가나 상담치료사 앞에 놓인 그들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거나 얼어붙은 떡 같았다.
더 큰 아이가 가게 주인의 시선을 가리는 동안 작은 딸아이는 먹고 싶은 막대사탕을 훔쳐내곤 했었다.
‘카무플라주’의 온기가, 유일하게 그들의 생계와 활달을 도와준 셈이었다.
가족은 원래 부재하였으니, 상실을 애도하거나 그리워할 필요조차 없었다.
다만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느 자활이 거기 한때 빛나고 있었다고.
엄원태 시인 / 종후성(鍾後聲)
鍾은 제 몸을 울려 저무는 한 해를 보내고 새날을 향해 장중한 소리를 퍼뜨렸다
종은 제 몸을 울려, 그러니까 저의 온몸을 진저리쳐 떨어댄 것이어서, 어둠속에 기 ㅡ 인 여운을 남겼다
그런 여운은 속이 빈 것들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여운은 오래 남는다 내 빈 가슴속에도 그것은 아직 남아 있다 찬바람에 몸을 맡겨 떨고 있는 버들개지의 보드라운 싹눈에도 그것은 남아 있다
오래 진저리쳐본 것들만이 그 여운의 미미한 떨림을, 소리 없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다
그 진저리침 끝에, 노랗고 새하얀 꽃망울들을 터뜨리는 개나리 목련의 봄날에 가서야 누군가는 아아, 하고 뒤늦게 그 소리를 듣는다
- 시집, <물방울 무덤>(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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