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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희지 시인 / 영원한 가오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9.

송희지 시인 / 영원한 가오리

 

 

 *

 

 금요일의 호스텔 카페

 관조적 봄눈

 로맨틱 흙탕물

 

 에쿠니 가오리*를 사랑하는

 청동 인간들은

 작은 탁자 하나 둘러싸고

 손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 *들고

 낭독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대 위로 날아오를

 한 마리의 가오리를

 

 *

 

 영원한 가오리를 찾고 있습니다 밀봉하거나 포르말린에 절이거나 에코백 찍찍이에 붙여놓고 매사추세츠 하이킹 떠나도 균일을 잃지 않을 견고함

 

                         그러니까 연애를 구성하는 건,

                         커플이 아니라 배경이잖아요?

 

 언젠가

 혼자서 박물관에 간 적 있습니다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되어보세요 옛 의복(衣服) 코스프레 체험하기 동방의 오색 스탬프 모으기 민족의 정신 느끼기

 흐르는 전시관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다*

 

 최초의 도구를 발견했습니다 어리고 뾰족한 하나의

 주먹도―끼를

 

                         지난날 노량진에서, 우리는 식탁 앞에서 눈 맞췄지

                         겹쳐졌지 비린 물 냄새 맡으며 영종도 꽃놀이 얘기하며

                         가오리핏 커플티 맞춰 입고

                         가오리 회 가운데 두고

                          한가득 우리는

                          쌍둥이 같았지

 

 4월에는 꽃이 지고 꽃이 핍니다

 박물관 공원에는 분수 하나 나무 하나 미끄럼틀 하나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기로 달려가는 소년과 소년을

 맨발을 보았습니다 뒤섞이는 맨발 거리를 유지하는 맨발

 짓밟는 맨발과

 짓밟는 맨발

 

                        흰 꽃 피네 붉은 꽃 지네

                        붉은 꽃 피네 흰 꽃 지네

 

                        꽃은 기억되네 원탁처럼

                        꽃은 작동되네 알파고처럼*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

                        사뿐히 즈려밟고*

                        맨발의 소년 한 바퀴 뱅뱅

                        옷자락 지느러미

                        펄럭이며

                        달려간다네

 

 회전문으로

 박물관으로

 

  뒤편으로

 

  *

 

 둥그런 바닐라 아이스크림

 일렁이는 투 샷 에스프레소

 일상적 아포가토*

 

 미츠무라 가오리*를 사랑하는

 청동 인간들은

 작은 탁자 하나 둘러싸고

 손에는 하나의 손 간신히 들고

 단독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대 위로 날아오를 가오리를

 한 마리의 인―간을

 

 1) 일본의 소설가

 2) 에쿠니 가오리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인용

 3)  강산에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에서 인용.

 4)  알파벳의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5) 김소월, 「진달래꽃」에서 변용.

 6)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얹어내는 디저트의 일종

 7) 일본의 아이돌

 

 


 

 

송희지 시인 / 가정

 

 

1

 

그가 그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줄줄 흘러내리는 뱃살을 가진 그의

까만 목구멍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흰 물

 

2

 

모든 범람은 순서를 가진다

태어나기 직전부터

그는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고

 

그의 검은 목은

먼 조상으로부터 오순도순

대물림 받은 흔적이다 진화론을

증명하듯이 줄어든 뼈를 추모하듯이 나날이

밤을 되새김질하는 목구멍

 

깜박거리는 가로등 밑에

밤마다 그는 몸을 버려두었고

 

손은

잡기 위한 것일까

놓아버리기 위한 것일까

젖이

그의 배꼽을 타고 줄줄

넘쳐흐르고 있었다

 

3

 

젖과 피는

동일한 성분을 쥐고 흐른다

 

아프다

아프다

 

더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의 가슴에서

줄줄

젖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로써 모르는 타인이다, 그는 하나의

검침원이다

 

일면도 없는 이에게

피를 주는 일

 

아프다

아프다

붉은 냄새를 풍기며

목부터 잠기기 시작하는 실루엣

범람하는 젖*

 

4

 

한낮이었다

 

눈부시도록 검은 새가

햇빛을 집어 먹으며

호수 위를 날아다녔다

 

탁한 호수 속에서

뼈 없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죽을 것같이

죽을 것 같은데

 

누구도 죽지 않고

 

물속에서

서로의 꼬리를 깨물며

 

가깝게

멀어지고 있었다

 

* bgm: 창세기 6장 5-7절

 

『공정한시인의사회』(2019, 6월호)

 

 


 

송희지 시인

2019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