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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천 시인 / 새들의 무렵 같은
하루치의 기차를 다 흘려보낸 역장이 역 앞의 슈퍼에서 자일리톨 껌 한 통을 권총 대신 사들고 석양의 사무실 쪽으로 장고나 튜니티처럼 돌아가는 동안과
세간의 계급장들을 하나씩 떼어 부리에 물고 새들이 해안 쪽으로 날아가는 무렵과 날아가서 그것들을 바다에 내다 버리는 소란과
새들의 무렵이 와서 접수하는 이 무소불위의 전제주의와
(체재에 맞추어 불을 켜기 시작하는) 카페와 술집과 소금구이 맛집들과 무얼 마실래?와 딱 한 병씩만 더 하자와 이인분 추가와
헤아려 보거나와 잊어버리자와.
정윤천 시인 / 그랬던 거라고 하자
회색빛 보다 보라색 보다 먼 곳에서 였다고 하자
나뭇잎들이 머리 위에서 삽시간에 흔들렸던 거라고 하자
오래 전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자.
정윤천 시인 / 비린내 곁에서였다
생선가게들이 늘어선 좁고도 긴 골목의 끝자락에 자리한 낡은 모텔의 구석방 안에서였다 두 달 남짓의 장기임대로 두 평 비린 거처의 방주(房主)가 되고나자 테이블 위의 물 잔에서도 옷장 안에 걸어둔 바지 주머니 속에서도 비린내는 흘러나왔다
한 권의 시집에 담아야 할 몇 십 편의 시들을 얼음 든 생선 상자 마냥 쌓아 올려볼 요량이었는데 수십 편 시들의 입과 귀들이 비린내처럼 열리던 일이 신기하였다 내게 오는 시간의 온갖 속내들을 닦달하여 시를 쓰는 일에 우선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창문을 열면 어디선가 예기치 않은 원군이라도 닿은 것처럼 비린내는 몰려오곤 하였다 비린내는 살아서 겪게 되는 수많은 쓸쓸함과 간절함 그것들의 과거와 지금을 오롯이 제 몸에 간직한 특별한 기척 같았다 마음이 외로워진 날이면 비린내는 더더욱 극성을 부리기도 하였다
어디선가 습하고 비린 밤안개가 몰려왔던 저녁에
*“마른 몸의 생선에게도 물이라는 단어 하나를 부여해 주면 물고기가 되어 살아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리라는 터무니없는 열망의 시 한 편이 헤엄쳐 왔던 날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돌이킬 수 없는 연애시와도 같은 기억의 몇 장면들은 비린내의 표정이거나 포즈로 살아 있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모르는 척 지나쳐 왔었던 내 안의 지독한 비린내 곁에서였다.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에 들어 있는 '물고기라고 쓰는 시 한 편 같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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