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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승하 시인 / 고해성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8.

이승하 시인 / 고해성사

 

 

 고해에 노를 저어 가는

 저는 아직도 사람입니다

 모든 고뇌하는 넋은

 고뇌의 깊이로 말미암아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한번쯤

 사람답게 살라고 낳아주셨으나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더럽혀지고

 자주 참담해지고

 

 이 밤에 날벌레들이

 형광불빛을 향해 머리 박고 달려듭니다

 제가 살아온 날수만큼 많은 미물이

 저로 인해 죽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달수만큼 많은 사람이

 저로 인해 괴로웠을 것입니다

 죄 얼마나 더 지어야

 단 한 번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완전한 어둠 속에 꿇어앉아

 몇 시간째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홀로 기도하는 밤에야

 제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사람 같은 사람이

 사람의 얼굴을 한 자식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이승하 시인 / 바다직박구리는 지금 어디를 날고 있을까

 

 

도대체 며칠째 내리는 비인가

멸종하는 생의 종種이 늘고 있다지만 너희들은 지금

살아서 이 장대비를 어디서 피하고 있는지…… 지겹다

이 장맛비를 보며 오늘도 나는 저작詛嚼한다

조류독감이 돌아도 죽지 않은 닭의 다리를 날개를

 

이 세상에 무너지지 않는 것은 없는가 범람하는 강

시가지가 또 하나 물에 잠기고 드넓은 저 들판

수확기의 과수들, 비닐하우스들, 밭뙈기들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수천 마리의 닭과 오리

가금家禽이 몽땅 가출해버리면 집의 금고는 텅텅 비겠지

 

계절이 바뀔 때면 겨울을 나러

흑산도에서 대만으로 이동하는 바다직박구리들아*

너희들이 쉴 곳은 이 반도의 남쪽에 없다

물이 가다 멈추면 물고기가 불고기 되는데

가둔 물마저도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다 발라버렸다

 

하늘이 아닌 하늘은 아직도 천둥을 치고

땅이 아닌 땅은 온통 물의 절벽 물의 철벽

숲이 아닌 숲에서 독감을 앓고 있는

우기의 바다직박구리들아 꽥꽥 울기라도 하렴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올 필요는 없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 졸졸 흐르던 시냇물도

우당탕탕 계곡물처럼 흐르는데

녹조인가 적조인가 이게 강인가 뻘밭인가

인간세상 뭐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간에 바다직박구리

이 빗속에 힘차게 대만까지 날아가고 있다

 

* 철새연구센터에서는 바다직박구리에 고유번호를 기록한 연구용 가락지를 발목에 부착해 흑산도에서 날려 보냈다. 이후 33일 만에 흑산도에서 1,100km 떨어진 대만에서 바다직박구리가 발견되었다(<경향신문>, 2014. 10. 30).

 

―『나무 앞에서의 기도』(Km)에서

 

 


 

이승하 시인

경북 의성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저서로는 시집으로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폭력과 광기의 나날』, 『박수를 찾아서』, 『생명에서 물건으로』가 있고, 시론집으로 『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 『한국 현대시 비판』 『한국 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와 그밖에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과 시선집 『젊은 별에게』가 있음.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