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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 시인 / 생활
우리 집 거실 귀퉁이에는 무말랭이가 마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말랭이가 마르던 곳이다 땅콩알이 마르던 곳이다 은행알이 마르던 곳이다 구린내를 풍기며 인삼주도 더덕주도 호박덩이도 함께 마르고 있는 우리 집 거실 귀퉁이 고향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농촌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대도시 아파트에 살면서도 나와 아내는 여태껏 농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좁아터진 거실 이곳저곳을 오가며 오늘도 아내와 나는 습관처럼 자연에서 준비해온 먹거리들을 다듬고 있다 이것들 다 나날의 목구멍이 시킨 것이지만, 나날의 생활이 시킨 것이지만...... 목구멍보다, 생활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으랴.
이은봉 시인 / 따듯한 말
말에는 다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지 차가운 말에는 차가운 마음이 담겨 있고 따듯한 말에는 따듯한 마음이 담겨 있지 따듯한 말은 사전 속에 있지 않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나날의 삶 속에 있지 밥솥의 밥처럼 말도 서로 나눌 때 따듯해지지 따듯한 세상을 위해 따듯한 말 나누어야지 국솥의 국 나누듯 따듯한 말 나누어야지 따듯한 말은 배추 속처럼 뽀얗고 부드럽지 언제나 가슴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게 하지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말을 나누다 보면 무쇠 밥솥의 찰진 밥을 나눌 때처럼 세상 둥그렇고 찰지게 익어가지 주걱 위 밀가루 반죽 젓가락으로 뚝뚝 떼서 만든 구수한 수제비 같은 말 만들고 싶지 따듯한 말로 가득한 세상 만들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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