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향림 시인 / 스킨답서스는 날개를 단 흔적이 있다
베란다 창틀에 쿵! 무언가 부딪치고 빨래 건조대에서 표백되어 가던 햇빛 몇 벌이 출렁거린다. 위층에서 던진 화분이 떨어지고 나는 난간에 걸린 푸른 줄기를 순간 낚아챘다. 날개는 많이 상해 있었지만 잔뿌리와 줄기는 몇 몇 남아 있었다. 그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진 뒤 며칠 만에 깨어났다. 기진해 있던 입에서 뭉친 숨길처럼 광합성을 토해내고 철봉 하듯이 제 몸을 늘이는 것이 아닌가. 잎이란 잎에서는 푸른 박쥐들이 튀어나와 날아올랐다. 날마다 허공을 붙잡고 제 몸 늘여 내려오더니 우리 집 베란다를 곧 진초록으로 물들여 놓는다 잠도 자지 않고 제 몸을 늘이고 늘이는 그를 나도 모르게 그만 꺾고 또 꺾어내었다. 자고나면 생기고 생기는 매듭들 통제할 수 없는 그 생명력을 보는 건 왠지 서러운 일이었다. 어느덧 몸 수척해진 스킨답서스 그는 언제고 날아갈 태세로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미세먼지 없는 어느 날 위층 요란한 곤돌라 소리에 열린 창문으로 박쥐 떼처럼 그것들이 정말 날아가 버린 건 얼마 전이었다. 빈 하늘뿐이었다.
계간 『문파』 2021년 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기철 시인 /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 외 7편 (0) | 2021.09.09 |
|---|---|
| 문태준 시인 / 가죽나무를 사랑하였다 외 6편 (0) | 2021.09.09 |
| 김주대 시인 / 풍장 외 1편 (0) | 2021.09.08 |
| 이은봉 시인 / 생활 외 1편 (0) | 2021.09.08 |
| 이승하 시인 / 고해성사 외 1편 (0) | 2021.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