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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노해 시인 / 사랑은 불이어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8.

박노해 시인 / 사랑은 불이어라

 

 

 딸아 사랑은 불같은 것이란다

 높은 곳으로 타오르는 불같은 사랑

 그러니 네 사랑을 낮은 곳에 두어라

 아들아 사랑은 강물 같은 것이란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강물 같은 사랑

 그러니 네 눈물을 고귀한 곳에 두어라

 우리 사랑은 불처럼 위험하고

 강물처럼 슬픔 어린 것이란다

 나를 던져 온전히 불사르는 사랑

 나를 던져 남김없이 사라지는 사랑

 사랑은 대가도 없고 바람도 없고

 사랑은 상처 받고 무력한 것이지만

 모든 걸 다 가져도 사랑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사랑이 길이란다

 사랑이 힘이란다

 사랑이 전부란다

 언제까지나 네 가슴에

 사랑의 눈물이 마르지 않기를

 눈보라 치는 겨울 길에서도

 우리 사랑은 불이어라

 

 


 

 

박노해 시인 / 동그란 길로 가다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박노해 시인(박기평)

1958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 16세 때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님. 1984년 스물일곱 나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1989년, 분단 이후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