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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이상국 시인 / 꽃
노래하면 몸이 아파 그러한 그리움으로 한 서른 해 앓다 일어 피는 꽃을 보면 눈물 나네 노래로는 노래에 이르지 못해 먼 강 푸른 기슭에서 만났다 헤어지던 바람은 흐린 날 서쪽으로만 가고 작고 작은 말을 타고 삶의 거리를 가며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알기까진 나는 너무 많이 울었네 한 서른 해 아픔으로도 사랑 하나 깨우지 못하여 그러한 그리움으로 마당귀 피는 꽃을 보면 눈물나네
- 이상국 시집 <동해별곡> 1985
이상국 시인 / 소를 팔며
가는구나 반추의 슬픈 식욕을 씹으며 떠나가는 그대 발굽의 아우성. 첫새벽 어둠을 한 바리씩 실어 내 건초를 바꾸던 그대 조상은 죽어서도 영영 자갈밭을 가고. 보이는구나 굽어서 아픈 논두렁 밭두렁을 돌아 저문 들로 다시 오는 그대 후생의 고삐가 보이는구나.
이상국 시인 / 해와 달은 쉬지 않는다
주오일제가 되고도 우리나라 논에서는 토요일에도 벼가 패고 비는 일요일 새벽에도 온다 땅이 끝없고 나라가 땅마다 가득해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날이 그날이어서 고래는 주말에도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사과는 낯을 붉히며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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