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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경 시인 / 언 강
눈 덮인 북한강 서성이다 저 강 너머 나루터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언제면 데리러 올까 기다리던 작은 아이,
바람의 위안에 눈물 흘리던 유년의 차가운 윗목
이철경 시인 / 내력
나쁜 시력도 집단생활을 청산한 후에야 안경을 맞출 수 있었듯 유년의 단체생활은 지병을 만드네 종일 노동에 시달리던 시절, 일을 마친 후 강가 멱 감다가 어린 나이에 한쪽 귀를 잃은 후 난청과 이명은 나의 삶
몰려오는 파도에 터지기도 뺨 맞은 타격으로 터지기도 비행 중 기업에 터지기도 그럴 때마다 고막이 뚫리고 재생되길 수차례 참 많은 우여곡절의 수난사를 내 귀는 기억하네
잦은 이명과 어지럼증은 피곤할 때마다 흘러내리는 귓속의 눈물 사는 건, 고통을 안고 상처를 핥으며 아무도 모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내는 것이라 하네 생채기를 내는 이물질이 세월 흘러 진주가 될 때까지 고통이 찬란한 빛을 발할 때까지
이철경 시인 / 한정판 인생
국가나 조직에서 입력된 명령에 따라 새벽이면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지요 저녁이면 퇴근길 한잔의 술도 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자유와, 스스로 판단하여 입력된 정보를 벗어날 수 있는 휴머니즘 로봇입니다 국가나 소속된 단체의 명령을 받아 부조리나 잘못된 명령에도 감정 없는 동료처럼 묵인하고 눈감고 귀 막은 벌레처럼 살 수 없는 한정판 로봇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몸에 기름칠하고 일용할 양식을 투입해 주던 조직의 명령도 거부할 수 있도록 입력되어 난관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나를 종종하는 조직에 사표를 던지고 로봇에게 어울리지 않는 휴머니즘에 고심하고 똑같은 사고 비슷한 사유에 대해 거부하기도 했지요 모두가 침묵하는 최상의 안정된 조직에서 나의 몸부림은 그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은 휴머니즘이 탑재된 나의 두뇌에 바이러스가 침입하여 동료들에게 삽시간에 퍼질 거라 우려했지요 덜떨어진 완장 찬 로봇들은 길목마다 바이러스 치료제를 매설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합니다 휴머니즘이 탑재된 부분을 분리하여 스스로 한 단계 낮추리라 다짐하며 한정된 공간에 같은 생각 비슷한 목소리 흉내를 내 볼까 했지요 그러나 이미 바이러스가 번진 휴머니즘이 탑재된 뇌와 심장은 그것마저 거부하며 잘못된 명령을 거부합니다
이철경 시인 / 소시민의 꿈
내 키와 몸무게는 언제나 평균이고 이상적인 체구를 가지고 있지 하지만 난 더미*야, 곧 죽을 거란 걸 알고 있어 시간의 굴레에서 한 치 오차도 없이 평균을 유지하기 위해 기름을 칠하고 풀어진 나사를 조여주면 바로 투입할 수 있지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반복되는 업무와 쳇바퀴 돌듯 익숙한 일상을 지치지 않고 감내할 수 있어 며칠 전에는 고속으로 달리는 실험을 했어 사람들은 나의 눈을 가린 채 심장과 머리에 센서를 달고 가속도를 올렸지 나는 기억해, 난간에 기대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하늘을 나는 꿈처럼 환상통을 치르고 있었어 실험 직전 급속도로 기억은 지워져 버리고 박동하던 심장도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멈춰버린 것 같아 쾅!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진 내 삶의 일부는 가시 같은 뼈들이 뒤틀리기 시작했어 다리는 떨어져 나갔고 심장은 기능이 정지된 동체처럼 움직일 수 없었어 사람들이 달려와 손상된 부위를 톱으로 자르고 용접을 하고 몇 날 며칠을 기름칠하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지 죽기 살기로 대기하고 있는 동안 친구들이 충고하더군. "꿈이 너무 크면 안 된다고" 가끔 알코올로 닦아주면 견딜 수 있지만, 그건 때때로일 뿐이야 그때 나는 손등을 보며 생각했어 프레스에 눌린 별모양이 언젠가 보았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것을!
* 더미(Dummy): 인체의 상해를 측정하는 모형인형
이철경 시인 / 신기루
스크린도어가 없는 무방비의 공간 열차가 숨 가쁘게 역 구내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한 걸음씩 뒷걸음치고 “이 열차는 이번 역을 통과하는….” 방송이 끊길 즈음 이어지는 기적 소리와 함께 저만치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물러섰던 행인들은 분리된 몸체에서 터져 나온 피로 얼굴에 범벅되어 넋을 잃고 꼼작 못하고 있다 저만치 끊어진 다리 하나와 이쪽의 두개골 그리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서진 무수한 피톨이 제각기 흩어져 있다 다리 한쪽은 부딪히기 직전을 기억하는지 발버둥 치듯 일정한 간격으로 시계추처럼 움직이고 터진 복부는 설익은 순대처럼 붉은 피에 휘감겨 있다 두피를 빠져나와 드러난 두개골에 순두부 같은 뇌 파편이 힘겹게 숨을 쉬는지 여리게 움직인다
詩想은 꿈속을 찰나에 통과하는 기차처럼 순식간에 왔다 사라지는 것을 사지가 산산이 부서져 주인 잃은 동체처럼 조각난 기억의 파편에 머물던 이미지는 저 떨림이 멈추는 시점에 분해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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