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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경 시인 /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대숲과 코스모스를 휘저으며 어디서 오래도록 덜컹거리며 나를 싣고 왔듯 사람들이 몰려 왔으면 좋겠다 몰려왔으면 좋겠다 어둠 속을 달려온 시커먼 그 쇳덩이가 쉭쉭, 숨을 몰아쉬는 동안 큼직한 보따리와 흰옷의 사람들이 시끌벅적 이 바닷가에 펼쳐졌으면 좋겠다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자가용은 너무나 미끈하고 핸드폰은 점점 작아지고 디지털의 표정, 그 생각은 너무나도 엉뚱해지고 그 꿈들은 세련되고 약아빠졌으니 육중한 열 량 스무 량의 기차가 거친 쇳내를 풍기며 들어서는 바닷가 역사驛舍 사람들이 사철나무 울타리에 깃들어 아침과 햇살과 바다 물결을 길게 이고 지고 사람이 왔다야! 하며 흥청흥청 장터처럼 모여들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박구경 시인 / 버리려는 냄비를 보다가
깊고 추운 겨울밤 홍시가 어는 밤 쭈그러들고 검누래진 저 냄비 가득 닭을 삶아 살아 있던 날개를 삶아 웅크리고 모여든 여럿의 여고시절 친구들과 까르르 소주를 마시고 싶다 다들 천천히 얘기에 얘기로 취해 아무렇게나 하나씩 쓰러져 잠든 걸 보고 싶다 나는 비틀비틀 문밖으로 나가 찬 공기 속에 한 눈빛을 꾸준히 유지하며 내버려진 10년 아니 30년 간의 춥고 깊었던 겨울밤을 잠시의 쇠 난로처럼 활활 만나고 싶다
박구경 시인 / 그릇
정신이 좀 드신 어머니는 돌아올 때까지 먹고 버티라고 빈집에 홀로 남을 강아지 앞에 혼자서도 잘 먹고 있으라고 뒤집히지 않는 돌그릇에 밥을 듬뿍 담아 놓으셨다
강변 쪽에서 뿌옇게 눈이 덮여 오고 있었다
다홍치마 초록 저고리가 멀고 길게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미라같은 몸뚱이로 냉골에 뼈만 남긴 채 감나무 가지 하나 가벼이 꺾어 쥐고 놓지 않으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비석 같은 다리 이름을 그릇이라 지어 부르며
박구경 시집 ‘외딴 저 집은 둥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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