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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현 시인 / 지구본 택배
지구본을 꺼내다가 상자에 박힌 글귀를 꼼꼼히 읽었다
-조심히 다루어 주세요 74억 명이 이 안에 숨 쉬고 있으니까요
- 직사광선, 화기 등에 가까이 놓지 마세요 극지방이 녹아 해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바닥에 살살 놓아주세요 자칫 지진 소동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정밀한 공법으로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지구별은 오래오래 지속되어야 하니까요
-한국 일본 사이 바다를 '동해'로 표기하였습니다 지구본은 진실이 생명이니까요.
-『지구본 택배』 ,청개구리 2019.
윤삼현 시인 / 스마트폰은 알고 있다
젤 친한 친구 스마트폰이다
퍼즐게임 한 번 하고 나면 한 시간이 뚝딱 지나간다 톡톡톡 단추를 두드리다 보면 바람처럼 시간이 지나간다
공부시간에도 스마트폰 만지작만지작 둘이 죽고 못 산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긴장하고 있다 손 끝 떨림이 말해 준다
사나워진 엄마 눈초리가 자기 때문이란 걸 진심으로 알아차리고 있다
『지구본 택배』(청개구리, 2019)
윤삼현 시인 / 시인이 된다는 것
그래, 그래, 희망의 끝까지 가보는 거다
맞아, 맞아 절망의 끝까지도 가보는 거다
열정의 바다에 몸 적셔 절이고 절인 넋으로.
-윤삼현, <시인이 된다는 것>, <<뻐꾹소리를 따라가다>>, 시와사람, 2009.
윤삼현 시인 / 뻐꾹소리를 따라가다
간밤 가랑비에 목 씻은 뻐꾹소리일 게다 숲과 숲 깨어 일어나 궁글려 소리 넘긴다 세상에 고하는 첫 울음 온 산이 되삼킨다.
문득 그건 은자(隱者)의 손, 꼭꼭 숨어 길을 트는... 다시 또 정적과 고요 띄엄띄엄 물소리 긴 여정 생애 이렇듯 울림으로 남겠거니.
윤삼현 시인 / 앙코르와트 2
말없는 바윗돌을 깨고 부수고 다듬으면 돌만으로 도시 하나 거뜬히 세우나니
돌들아! 내 안의 돌들아! 너는 무얼 세울 수 있니?
윤삼현 시인 / 황홀한 세렝게티
본능일까 우리는 강을 앞에 두고 있다
평원 따라 까맣게 줄 이은 민족 대이동
물살은 깊고 세차다 영혼이 부르르 떤다.
어느 누가 길을 묻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황홀한 길이 있어 다만 나아갈 뿐
사나운 이빨 직감하고서도 강물로 뛰어든다.
윤삼현 시인 / 낙엽
여전히 홀로였다 가파른 걸음이었다 세상에 외로운 이 내 하나 뿐일 거라며... 그 때다, 한 걸음 앞서 누군가 걷고 있었다 바짝 낮춘 몸짓으로 총총히 걷는 뒷 모습 가다 서다 내 곁에서 바스락거리는 인기척 나보다 쓸쓸한 영혼 하나 그렇게 동행해 주었다.
윤삼현 시인 / 엑스터시스
만추 끝자락 그녀가 문자를 보내온다 무채색 일상 위에 덧칠하는 열광의 언어 때마침 원효사에서 맞딱뜨린 무등산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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