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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철 시인 / 한잠
저녁이면 막걸리와 소주 둘로 나뉜다 젊은 측은 소주가 좋지만 유일하게 막걸리를 고집하는 이 노인 박정희 예찬론자다 그분이 막걸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아 막걸리 드실 때는 정말 괜찮았는데 나중에 씨바스로 바꿨다가 돌아가셨지 차지철 그놈 땜에 그리 됐다구 여러분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해야 해 이렇게 평생 살 순 없잖아? 젊은이들 실실 웃는데 일장연설 잠잠하다 했더니 어느새 고개 떨어뜨리고 코고는 소리.
『동양하숙』(서정시학, 2019)
신원철 시인 / 고향의 노래
가족은 서울에 두고 태평양 건너 로스엔젤레스 하숙집 방 한 칸 빌려 홀로 지내면서 클라리넷을 분다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섬집아기아목동아에델바이스사랑을위하여고향무정섬마을선생님방랑시인김삿갓울고넘는박달재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뚫고 창밖 뜨락을 잔잔하게 돌아다니다가 해가 슬슬 달아오르는 9시, <만남>에서 한 번씩 펄쩍 뛴 다음 방으로 돌아온다 그래그래그래 혼자 나와 있는 이 집 사람들 고향생각 그리운 노래 나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웃는
신원철 시인 / 20년
오 헨리의 소설처럼 한 사람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 삼척 추암바다의 촛대바위는 여전히 뾰족하지만 나는 호박이 되었다
가슴 시리던 한티재 아래 맹방바다도 꿈속 같던 환선 동굴도 잔잔해지고, 지금의 내 나이였던 선배들 소주에 개고기 잘 먹고 벌건 얼굴로 호령호령 하더니 그중 몇은 기저귀 친구가 되었다 반짝이던 동료들 맹렬하게 앞서가다가 술 때문에 가거나 여자 때문에 목이 잘리기도 했다
점처럼 이어지던 일과 사건들 스무 번의 봄 하품 몇 번 했더니 흘러갔다
《동양하숙》서정시학.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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