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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외순 시인 / 수박을 읽다
진열대 언저리로 내몰린 수박 한 통 반쯤 시든 꼭지 보며 선뜻 손이 안 가는데 번번이 면접에 실패한 조카 녀석 떠오른다
외모보단 실력이지 등 토닥여 주지만 입가에 검은 모반(母班) 취업 문 못 열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 블라인드 채용이라
여민 속 가만 풀자 왈칵 쏟는 붉은 속내 벼린 칼날 물고 있는 씨앗 하나 옹골지다 간신히 잡은 그 기회 놓칠 수는 없다는 듯
-『단편같이 얇은 나는』(고요아침, 2019)
황외순 시인 / 눈
열한 계절을 지나 당도한 편지 한 장
지난 일은 모두 덮자, 예서 새로 출발하자
심장에 현을 켜는 말
시리도록 반짝인다
시조집『단편같이 얇은 나는』에서
황외순 시인 / 감자
몸져누운 오랜 날들 기척 한 번 없더니만
몇 달 만에 들른 며느리 이내 가는 서운함
‘내 아직 안 죽었어야!’
새파랗게 눈 흘긴다
시조집『단편같이 얇은 나는』에서
황외순 시인 / 접시꽃 1
아, 아 아,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볼륨이 너무 높다 고막에 가득 찬다
대낮에 켜진 스피커 먹이려는 말의 은총
시조집『단편같이 얇은 나는』에서
황외순 시인 / 접시꽃 2
수십 대의 카메라 담장 밖에 진을 친다
새 나오는 숨소리도 빠짐없이 찰칵찰칵
특종은 내가 잡는다 너도 나도 줌 인 줌 인
시조집『단편같이 얇은 나는』에서
황외순 시인 / 책을 읽다가
권연벌레 새끼처럼 꿈틀대는 글씨들 행간을 넘나들며 생각을 흩는다 잡힐 듯 또 뒤얽히는 여러 겹의 실마리
몇 편으로 엮어졌을까, 단편같이 얇은 나는 엉성한 구성의 식상한 기승전결 충격도 반전도 없는 어느새 후반부다
모티브는 다르지만 엇비슷이 닿는 결말 너처럼 후회하거나 그처럼 만족하거나 한 호흡 쉬었다 간다, 눈 비비며 발밤발밤
시조집『단편같이 얇은 나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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