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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경희 시인 / 과메기 맛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1.

박경희 시인 / 과메기 맛

 

 

오기로 뭉친 맨살의 고소한 맛

씹으면 씹을수록

아리고 아픈,

애증과 번민의 덩어리

 

얼면서 녹으면서

짭조름하고

쫀득한 그런 아픔

 

뭍에서 일렁이는 은빛

파도,

바람과 태양이 농축된

시간의 맛

 

수도승처럼 눈 감은 채

고통을 삭혀

중독된 황홀한 맛,

 

 


 

 

박경희 시인 / 꿈땜

 

 

 집 나오는 뒷덜미에 대고 꿈이 요상하니 오늘은 암 것도 하지 말라고, 먹줄 퉁기듯 가슴팍에 퍽퍽, 줄 그었던 마누라, 쓰잘 데 읎는 소리 말라고 윽박지르고 쇠스랑 둘러메고 겅중겅중 오른 산비탈 밭, 겨우내 감자 둔덕 위에 얹어 놓았던 지푸라기를 한데 모았다 바람도 잔잔하고 볕 좋아 불을 놨는데 어째어째 분 바람에 탑세기 날아가 여기 붙고, 저기 붙고 소리쳐도 듣는 이 없고, 흙 뿌리고 소나무 가지 꺾어 내리치고 비비고, 산으로 옮겨 갈까 봐 쇠스랑 들어 날아다니는 지푸라기 불을 잡아보는데, 꼽새 짐으로 한 짐이었던 불길 꺼지고 검불로 뒹굴어 다녔던 길 되짚어본다 까딱했으면 쇠고랑 찰 뻔했다고 묵은 솔이 관솔*이라고 아무래도 오랜 산 마누라 말 잘 들어야겠다고 오줌 지린 바지 질질 끌면서 돌아오던 둑방 길

 

* '오래된 것이 좋다'는 뜻을 가진 경구. 예전에는 관솔에 불을 붙여 등불대신 이용했다.

 

 


 

 

박경희 시인 / 진창구네

 

 

  진창구네가 누군가 하면, 그 집에 벙글벙글거리는 대추나무가 있는지, 서글서글한 향나무가 있는지, 지붕은 지푸라기로 얹었는지, 이엉은 제대로 엮었는지, 툇마루며 기둥은 대팻날에 옹이는 잘 다져졌는지, 대문은 사립문인지 솟을대문인지, 변소 간은 얼마나 깊은지, 빠지면 꺼낼 수 있는지, 福자가 쓰여 있는 밥그릇은 몇 개나 되는지, 여물 쑬 가마솥에 밑구멍은 안 났는지, 애기 지게는 있는지, 두레박이 이끼로 눈 가리고 뛰어들 목 짧은 우물은 뒤꼍에 있는지, 바람 부는 날 앞으로 고꾸라졌다 뒤로 자빠지는 대숲은 있는지, 지붕 속 터줏대감은 백 년 묵은 구렁이인지, 지붕 위 박꽃은 달밤에 환하게 피는지, 진창구네 서방은 박 씨인지 김 씨인지 알 수 없지만,

 

딱,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진창구네가 입은 속곳인데, 그 넓이와 깊이가 오대양 육대주 정도는 될 것이고, 모든 고뿔이 그리로 들어가 다시는 안 나온다는데, 얼마나 거시기가 좋으면 안 나올까, 뽀얀 진창구네 풀섶에서 이리 살랑 저리 살랑…….

 

댓바람에 콧물 흘리며 재채기하는 순간, 어머니 하시는 말씀

 

물 아래 진창구네 속곳 속으로 쑥 들어가라!

 

응?

 

 


 

 

박경희 시인 / 생일

 

 

 내가 니 애비한테 이런 소리 하는 거 야박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니 애비는 얼른 죽어야 혀, 도대체 이게 몇 년이여, 애 잡아먹고 것도 모자라서 하나 있는 아들 앞길 막는디 누가 좋다허겄냐, 아니 막말로 술 처먹어서 앉은뱅이 된 지가 도대체 언제여, 내가 저러는 거 꼴 보기 싫어서 술 입에도 안대는 사람이여,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니 에미 그렇게 도망가게 한 인간 아녀, 나도 내 동생한테 이렇게 막말하는 거 싫어, 너만 니 애비하고 피 나눈 거 아녀, 나도 니 피하고 같어, 그래서 달리 큰아비간, 나 너 고생하는 꼴 못 보겄어, 막내는 그렇게 갔다 쳐, 둘째 그년은 썩을 년이지 지 오라비 힘든 거 하나 생각이나 혀, 지 몸뚱이에다 처바르는 일에만 신경 쓰고 밖에서 일이나 치고 다니지, 색시 옆에다 두고 저 병신 애비 어쩌지도 못하고, 장가간다는 소리도 못하고, 그렇다고 요양원으로 가자고 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하니, 아니 진짜로 쳐 죽기나 하지, 그라면 거적때기로 둘둘 말아 땅에다 묻기나 혀, 이건 당뇨에 혈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보다도 건강혀, 허 참…… 새끼 목매달아 죽게 했음은 정신 차리고 살 일이지, 허구헌 날 술 지랄에 토방에 자빠져서 피투성이냐고, 내가 안 보고 사는 게 낫지, 이 속을 다 뒤집어 까도 니 속만 하겠느냐만, 나도 빙신 동생 옆에 두고 안 가볼 수도 없고, 가면 환장 허고, 내 생일상 앞에다 두고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했다만, 내 속도 속이 아녀, 까 봐…… 니 속도 속이 아니라는 거 내 대충은 알어…….

 

 


 

 

박경희 시인 / 강물은 달빛을 싣고

 

 

은밀한 속삭임

당신의 다정한 눈빛 따라

밤새 흘렀습니다

 

풍경소리도 잠드는

어둠의 골짜기

잔물결에 흔들려도

지칠 줄 몰랐습니다

 

새벽이 열린 틈으로

아침이 오는 사이

우리들 사랑은 신들렸는데

당신은 따스한 금빛 손목

살며시 놓고 가셨습니다

 

당신 따라 가는 길이

영원한 바다인 줄 알았는데

나만 홀로 나루터에 있고

당신은 정겨운 눈빛를 거둔 채

홀로 놓은 곳에 계십니다

 

어둠이 비밀처럼 내리면

당신이 다시 내게로 오심을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박경희 시인

1974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시안》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벚꽃 문신』,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쌀 씻어서 밥 짓거라 했더니』,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권법』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