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희 시인 / 과메기 맛
오기로 뭉친 맨살의 고소한 맛 씹으면 씹을수록 아리고 아픈, 애증과 번민의 덩어리
얼면서 녹으면서 짭조름하고 쫀득한 그런 아픔
뭍에서 일렁이는 은빛 파도, 바람과 태양이 농축된 시간의 맛
수도승처럼 눈 감은 채 고통을 삭혀 중독된 황홀한 맛,
박경희 시인 / 꿈땜
집 나오는 뒷덜미에 대고 꿈이 요상하니 오늘은 암 것도 하지 말라고, 먹줄 퉁기듯 가슴팍에 퍽퍽, 줄 그었던 마누라, 쓰잘 데 읎는 소리 말라고 윽박지르고 쇠스랑 둘러메고 겅중겅중 오른 산비탈 밭, 겨우내 감자 둔덕 위에 얹어 놓았던 지푸라기를 한데 모았다 바람도 잔잔하고 볕 좋아 불을 놨는데 어째어째 분 바람에 탑세기 날아가 여기 붙고, 저기 붙고 소리쳐도 듣는 이 없고, 흙 뿌리고 소나무 가지 꺾어 내리치고 비비고, 산으로 옮겨 갈까 봐 쇠스랑 들어 날아다니는 지푸라기 불을 잡아보는데, 꼽새 짐으로 한 짐이었던 불길 꺼지고 검불로 뒹굴어 다녔던 길 되짚어본다 까딱했으면 쇠고랑 찰 뻔했다고 묵은 솔이 관솔*이라고 아무래도 오랜 산 마누라 말 잘 들어야겠다고 오줌 지린 바지 질질 끌면서 돌아오던 둑방 길
* '오래된 것이 좋다'는 뜻을 가진 경구. 예전에는 관솔에 불을 붙여 등불대신 이용했다.
박경희 시인 / 진창구네
진창구네가 누군가 하면, 그 집에 벙글벙글거리는 대추나무가 있는지, 서글서글한 향나무가 있는지, 지붕은 지푸라기로 얹었는지, 이엉은 제대로 엮었는지, 툇마루며 기둥은 대팻날에 옹이는 잘 다져졌는지, 대문은 사립문인지 솟을대문인지, 변소 간은 얼마나 깊은지, 빠지면 꺼낼 수 있는지, 福자가 쓰여 있는 밥그릇은 몇 개나 되는지, 여물 쑬 가마솥에 밑구멍은 안 났는지, 애기 지게는 있는지, 두레박이 이끼로 눈 가리고 뛰어들 목 짧은 우물은 뒤꼍에 있는지, 바람 부는 날 앞으로 고꾸라졌다 뒤로 자빠지는 대숲은 있는지, 지붕 속 터줏대감은 백 년 묵은 구렁이인지, 지붕 위 박꽃은 달밤에 환하게 피는지, 진창구네 서방은 박 씨인지 김 씨인지 알 수 없지만,
딱,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진창구네가 입은 속곳인데, 그 넓이와 깊이가 오대양 육대주 정도는 될 것이고, 모든 고뿔이 그리로 들어가 다시는 안 나온다는데, 얼마나 거시기가 좋으면 안 나올까, 뽀얀 진창구네 풀섶에서 이리 살랑 저리 살랑…….
댓바람에 콧물 흘리며 재채기하는 순간, 어머니 하시는 말씀
물 아래 진창구네 속곳 속으로 쑥 들어가라!
응?
박경희 시인 / 생일
내가 니 애비한테 이런 소리 하는 거 야박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니 애비는 얼른 죽어야 혀, 도대체 이게 몇 년이여, 애 잡아먹고 것도 모자라서 하나 있는 아들 앞길 막는디 누가 좋다허겄냐, 아니 막말로 술 처먹어서 앉은뱅이 된 지가 도대체 언제여, 내가 저러는 거 꼴 보기 싫어서 술 입에도 안대는 사람이여,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니 에미 그렇게 도망가게 한 인간 아녀, 나도 내 동생한테 이렇게 막말하는 거 싫어, 너만 니 애비하고 피 나눈 거 아녀, 나도 니 피하고 같어, 그래서 달리 큰아비간, 나 너 고생하는 꼴 못 보겄어, 막내는 그렇게 갔다 쳐, 둘째 그년은 썩을 년이지 지 오라비 힘든 거 하나 생각이나 혀, 지 몸뚱이에다 처바르는 일에만 신경 쓰고 밖에서 일이나 치고 다니지, 색시 옆에다 두고 저 병신 애비 어쩌지도 못하고, 장가간다는 소리도 못하고, 그렇다고 요양원으로 가자고 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하니, 아니 진짜로 쳐 죽기나 하지, 그라면 거적때기로 둘둘 말아 땅에다 묻기나 혀, 이건 당뇨에 혈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보다도 건강혀, 허 참…… 새끼 목매달아 죽게 했음은 정신 차리고 살 일이지, 허구헌 날 술 지랄에 토방에 자빠져서 피투성이냐고, 내가 안 보고 사는 게 낫지, 이 속을 다 뒤집어 까도 니 속만 하겠느냐만, 나도 빙신 동생 옆에 두고 안 가볼 수도 없고, 가면 환장 허고, 내 생일상 앞에다 두고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했다만, 내 속도 속이 아녀, 까 봐…… 니 속도 속이 아니라는 거 내 대충은 알어…….
박경희 시인 / 강물은 달빛을 싣고
은밀한 속삭임 당신의 다정한 눈빛 따라 밤새 흘렀습니다
풍경소리도 잠드는 어둠의 골짜기 잔물결에 흔들려도 지칠 줄 몰랐습니다
새벽이 열린 틈으로 아침이 오는 사이 우리들 사랑은 신들렸는데 당신은 따스한 금빛 손목 살며시 놓고 가셨습니다
당신 따라 가는 길이 영원한 바다인 줄 알았는데 나만 홀로 나루터에 있고 당신은 정겨운 눈빛를 거둔 채 홀로 놓은 곳에 계십니다
어둠이 비밀처럼 내리면 당신이 다시 내게로 오심을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철규 시인 / 연인 외 4편 (0) | 2021.09.12 |
|---|---|
| 홍용희 시인 / 장마 외 1편 (0) | 2021.09.12 |
| 김정강 시인 / 물 외 4편 (0) | 2021.09.11 |
| 이길원 시인 / 북한 커피 외 2편 (0) | 2021.09.11 |
| 김완 시인 / 너덜겅 편지 4 외 9편 (0) | 2021.09.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