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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강 시인 / 물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1.

김정강 시인 / 물

 

 

바위에 부딪히면

바위 되고

잎사귀에 머물면

나무 되어버리는

어쩌면 제 모습마저

못 지키는 듯

 

은어의 비늘을 빛나게 하고

한 떨기 산나리꽃으로

한 개의 능금알로

때로는

반쪽 표주박 얼굴에서

차갑게 웃어주는

한 웅큼의 삶

 

 


 

 

김정강 시인 / 북한감자

 

 

너를 처음 만난 곳

휘황찬란한 백화점 진열대 앞

놀란 듯 댕그라니 쪼그리고 앉아있는

너의 이름은 북한 감자

 

찌든 생활에 시달린 듯 여위고 검은 너

황해바람 부는 듯

금시, 파도 울렁이고

두만강 마시고 온 너

 

정한수 떠 놓고 두 손 모으시던

외할머니 목 쉰 가락 새어나온다

 

핏줄 막아 둑 쌓은 그들 싫어

맨발로 온 너

오늘에사 나를

외갓댁 텃밭으로 보내주는구나

 

너는

그곳 하늘

그곳 바람

그곳 흙

그곳 피

 

 


 

 

김정강 시인 / 어머니 사랑

 

 

왜 이리도 내 가슴 아파옵니까

송곳에 찔린 양

내 마음엔 피가 흐릅니다

 

어찌 그리 기운이 없어 보이십니까

빨래줄엔 언제나

더 하얗게 빨래가 펄럭였는데!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한 그루 나무인 양

한 가닥 햇살 향해 자식 위한 기도뿐

 

마르지 않는 속 깊은 어머니 사랑

두레박 한 가득 넘쳐 흐릅니다

 

 


 

 

김정강 시인 / 향연

 

 

그 비어있는 벤치

으스러질 듯 낙엽

그렇게 가을 한자락 안고 뒹굴더이다

하늘 담은 호수

오색 햇살 엎드려

머리카락 행구며 단장 하더군요

 

나무가 나무가

치마폭 털 때 마다

아이 손에 들린 빠알간 사탕처럼

단물 한 웅큼 뚜두둑 흘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외로워 할 때

자연 어미는

하늘에서 가을 바구니 넘치게

내려 주나 봐요

 

사랑하라고

사랑하라고 !

 

 


 

 

김정강 시인 / 그림 한 장

 

 

어린 동생 어루시며

이 세상 다 안고 계신 듯

행복해 하시던 어머니 모습

 

마당가 빨래줄

펄럭이는 하얀 기저귀

 

참새들 우르르 자유타고 날아가 버리고

광주리 사이로 쏟아 내리는 빛의 춤사위

 

낮은 담장 너머엔

키 다 자란 접시꽃 행렬

굴렁쇠 굴러서

아이들 내일 잡으러

오는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날

 

그렇게 감꽃은

안락의 치마 위로

오월을

떨어트렸지.

 

 


 

김정강(金靜江) 시인

1944년 대구 출생. 2010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수필집 「사람들 사이에 부처가 있다」, 「부부 그 영원한 수수께끼」. 「은빛 날개」, 대구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대구수필가협회, 영호남수필회, 국제펜클럽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