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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강 시인 / 물
바위에 부딪히면 바위 되고 잎사귀에 머물면 나무 되어버리는 어쩌면 제 모습마저 못 지키는 듯
은어의 비늘을 빛나게 하고 한 떨기 산나리꽃으로 한 개의 능금알로 때로는 반쪽 표주박 얼굴에서 차갑게 웃어주는 한 웅큼의 삶
김정강 시인 / 북한감자
너를 처음 만난 곳 휘황찬란한 백화점 진열대 앞 놀란 듯 댕그라니 쪼그리고 앉아있는 너의 이름은 북한 감자
찌든 생활에 시달린 듯 여위고 검은 너 황해바람 부는 듯 금시, 파도 울렁이고 두만강 마시고 온 너
정한수 떠 놓고 두 손 모으시던 외할머니 목 쉰 가락 새어나온다
핏줄 막아 둑 쌓은 그들 싫어 맨발로 온 너 오늘에사 나를 외갓댁 텃밭으로 보내주는구나
너는 그곳 하늘 그곳 바람 그곳 흙 그곳 피
김정강 시인 / 어머니 사랑
왜 이리도 내 가슴 아파옵니까 송곳에 찔린 양 내 마음엔 피가 흐릅니다
어찌 그리 기운이 없어 보이십니까 빨래줄엔 언제나 더 하얗게 빨래가 펄럭였는데!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한 그루 나무인 양 한 가닥 햇살 향해 자식 위한 기도뿐
마르지 않는 속 깊은 어머니 사랑 두레박 한 가득 넘쳐 흐릅니다
김정강 시인 / 향연
그 비어있는 벤치 으스러질 듯 낙엽 그렇게 가을 한자락 안고 뒹굴더이다 하늘 담은 호수 오색 햇살 엎드려 머리카락 행구며 단장 하더군요
나무가 나무가 치마폭 털 때 마다 아이 손에 들린 빠알간 사탕처럼 단물 한 웅큼 뚜두둑 흘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외로워 할 때 자연 어미는 하늘에서 가을 바구니 넘치게 내려 주나 봐요
사랑하라고 사랑하라고 !
김정강 시인 / 그림 한 장
어린 동생 어루시며 이 세상 다 안고 계신 듯 행복해 하시던 어머니 모습
마당가 빨래줄 펄럭이는 하얀 기저귀
참새들 우르르 자유타고 날아가 버리고 광주리 사이로 쏟아 내리는 빛의 춤사위
낮은 담장 너머엔 키 다 자란 접시꽃 행렬 굴렁쇠 굴러서 아이들 내일 잡으러 오는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날
그렇게 감꽃은 안락의 치마 위로 오월을 떨어트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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