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길원 시인 / 북한 커피
북에서도 커피는 마셨지요? 어디예. 당 간부도 아닌데.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한 친구가 우리 집에 커피가 생겼으니 마시러 오라는 거예요. 친구들은 서양 놈들이 좋아하는 커피 맛 좀 보자고 모여 갔었지요. 아무리 기다려도 커피가 안 나오는 거예요. 커피 안 주노? 그랬더니 끓이고 있다는 거예요. 안 주인은 커다한 솥에 커피를 넣고 끓이고 있었어요. 그리곤 한 대접씩 가득 담아 주는데, 어찌나 쓰던지 서양 놈들은 이 쓴걸 뭐 좋다고 마시나 생각했지요. 우유 넣고 설탕 넣어 마시는 건 남쪽에 와서 알았지요. 요로코롬 향 좋고 맛있는데.
-『망명북한작가 PEN문학』(2019년 제5호)
이길원 시인 / 아침 제비꽃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누군가 싶어 창문 여니 봄바람 뒤따라 온 햇빛 창틀에 뛰어 올라 진진머리 장단에 춤을 춘다
눈부신 춤사위
짐짓 놀라 들에 서니 제비꽃 사랑에 취해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살랑거리네
살아 있어 행복한 날
이길원 시인 / 철조망에 걸린 편지
어머니, 거친 봉분을 만들어 준 전우들이 제 무덤에 철모를 얹고 떠나던 날 피를 먹은 바람만 흐느끼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총성은 멎었으나 숫한 전우들과 버려지듯 묻힌 무덤가엔 가시 면류관 총소리에 놀라 멎은 기차가 녹이 슬고 스러질 때까지 걷힐줄 모르는 길고 긴 철조망 겹겹이 둘러 싸인 덕분에 자유로워진 노루며 사슴들이 내 빈약한 무덤가에 한가로이 몰려 오지만 어머니, 이 땅의 허리를 그렇게 묶어버리자 혈맥이라도 막힌듯 온몸이 싸늘해진 조국은 굳어버린 제 심장을 녹일 수 없답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피를 그렇게 마시고도 더워질줄 모르는 이 땅의 막힌 혈관을 이제는 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식어버린 제 뼈위에 뜨거운 흙 한줌 덮어줄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무덤가에 다투어 피는 들꽃보다 더 따듯한 손길을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경희 시인 / 과메기 맛 외 4편 (0) | 2021.09.11 |
|---|---|
| 김정강 시인 / 물 외 4편 (0) | 2021.09.11 |
| 김완 시인 / 너덜겅 편지 4 외 9편 (0) | 2021.09.11 |
| 이홍천 시인 / 내일의 희망 외 6편 (0) | 2021.09.11 |
| 이정현 시인 / 고란새 외 3편 (0) | 2021.09.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