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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은교 시인 / 복숭아밭에서 노는 가족*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2.

강은교 시인 / 복숭아밭에서 노는 가족*

 

 

밥알에 푸른 그늘이 내려앉을 때

푸른 들이 장미의 팔을 잡아당길 때

햇빛 소리가 댓잎에 출렁출렁 서걱일 때

너의 힘줄이 지층에 부딪쳐 까마득히 쨍그랑거릴 때

까마득한 심연 가 철길에서

모든 추락이 비상(飛翔)일 때

집으로 돌아가는 새의 두 발이 화살처럼 맹렬히 달려갈 때

모든 구석에서 나비들의 일곱 빛 더듬이가 흩날릴 때

 

고모여/고모여/당고마기고모여

 

사랑이 종소리와 함께

또는, 또는

연잎 발에 묻은 진흙 사이를 지나갈 때

당신과 당신이 모르는 어깨를 겹쳐

죽음 사이를 지나가며 소리 지르는 아야아,

 

참, 아름다운 시간

 

아름다운 시간

 

* 이중섭의 그림 제목

 

 


 

 

강은교 시인 / 희명

 

 

희명아, 오늘 저녁엔 우리 함께 기도하자

너는 다섯 살 아들을 위해

아들의 감은 눈을 위해

나는 보지 않기 위해

산넘어 멀어져 간 이의 등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기 위해

워어이 워어이

나뭇잎마다 기도문을 써붙이고

희명아 저 노을 앞에서 우리 함께 기도하자

종잇장 같아지는 흰 별들이 떴다

우리의 기도문을 실어갈 바람도 부는구나

세월의 눈썹처럼 서걱서걱 흩날리는 그 마당의 나뭇잎 소리

희명아, 오늘 밤엔 우리 함께 기도하자

나뭇잎마다 기도문을 써붙이자

워어이 워어이

서걱서걱 흩날리는 그 마당의 나뭇잎 소리

 

 


 

강은교 시인

1945년 함남 홍원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同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시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바람 노래』,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등 다수 있음. 그밖의 저서로는 산문집 『허무수첩』, 『추억제』, 『그물사이로』 등과 동화로 『숲의 시인 하늘이』, 『하늘이와 거위』 등이 있음. 1975년 제2회 한국문학작가상과 1992년에는 제37회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