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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왕노 시인 / 너에게 가는 하이에나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2.

김왕노 시인 / 너에게 가는 하이에나

 

 

​M 버스를 타고 서울 역에서 내려 구 서울 역 건물을 지나 파출소 옆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중다리라 생각되는 곳에 오르면 장미도 피고 자작나무도 푸르나 머뭇거리지 말고 나는 네게로 가야한다. 다리를 지나 손기정 마라토너 기념관을 지나 가야한다.

 

  시민이 배드민턴을 치는 작은 공원을 지나면 하이에나 소굴인 우리의 아지트가 있다. 우리란 자생적 하이에나. 수많은 하이에나가 모여 괴기한 울음소리를 내며 암컷이어도 긴 가짜 성기를 노출시키며 밤이면 축제의 단에 오른 듯 공원에 모여 궁수자리까지 뻗치듯 울음을 울어야 한다.

 

  달이 가득 찬 날이 오면 악취 나는 세상의 가해자로 전락한 우리지만, 악취 나는 자들과 썩어 자빠진 곳에서 끝없이 일어나는 부패를 물어뜯고 삼키며 청소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우리는 신상이고 뭐도 없이 대의명분과 명예를 따지지 않고 일제히 하이에나가 되어야 하므로 몇 번의 접선 후 일을 한번 내자며 음모를 꾸미고, 그날은 열일 다 제쳐두고 모여 하이에나가 되자 약속하고

 

  우리를 둘러싼 이상한 예감은 우리를 감시할 끄나풀이 우리에게 스며든 것 같은데 그것을 개 무시하면 우리를 막는 벽, 경계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를 의심하는 것이고 체 게바라가 걸었던 눈부신 길이 있으므로 우리도 푸른 하이에나라는 단체명으로 우리가 가는 길마다 우리의 강한 이빨로, 우리의 강한 소화력으로 부패를 먹고 한 덩어리 똥을 누는 일, 상징성 강한 내 이야기로 청정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

 

  우리가 강북에서 오든 강남에서 오든 좌표는 일단 서울 역으로 찍고 와서 서울 역 뒤편의 작은 공원으로 올라오면 돼. 아지트 마당엔 고사리가 자라고 감나무에서 감꽃이 뚝뚝 지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터줏대감처럼 돌아다니나 우리가 왜 모여드는지 이유를 알고 있어 우호적인, 공원에 와 우는 산 까치,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도, 늠름한 우리가 행동에 나서면 함께 가세해 세상을 청소할 거라는 근본이 착한 이웃

 

  지금 아지트에는 돌단풍이 푸를 걸, 서울 천년 하늘을 선회하던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흔드는지 몰라, 한강을 거슬러 날아오르던 갈매기가 둥지를 틀었을 지도 모를 일, 하여튼 우리의 아지트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도 좋지만 세상이 청정지역이 될 거라는 기대로, 누구나 믿음으로 바라보고 호응하고 보낼 갈채, 우리의 아지트란 세상을 위해 순교하려는 순교자들이 모이는 곳 같아, 성지순례 오듯 흘러왔다 흘러가는 별들, 오체투지하며 왔다 멀어지는 노을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버리고 진화보다 퇴화하여 하이에나가 된다는 것은 타인의 의사보다는 극히 본인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 썩을 것을 물어뜯고 죽음의 즙 줄줄 흐르는 것을 먹어치운다는 것은 극한직업 중 가장 힘든 직업 같은 것, 우리가 거사에 나서려 할 때 유리창에 비친 우리를 바라보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구역질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라 견뎌내야 하는 것, 나는 지금 나를 버리고 풀꽃 자욱하게 피고 강물 흐르고 누치 꼬리에 꼬리치는 세월을 버리고 네게로 가는 것

 

  우리는 더 굶주려야 한다. 하이에나로 기아를 체험하듯 주먹밥 하나로 며칠을 견뎌야 한다. 주지육림의 시절, 극한의 고통 속으로 우리를 스스로 몰아넣고 피골이 상접하고 식욕은 왕성해야 한다. 우리의 투쟁으로 우리의 행동으로 청소로 다시 천년의 길이 훤하게 열린다면 우리가 하이에나면 어떻고 늑대면 어떻고 어둠을 갉아 새벽을 부르는 생쥐면 어떻고 괴질이면 더더욱 어떻고 어둠의 숨통을 조이는 뱀이면 어떠랴. 배달만 시키면 눈앞에 차려질 밥상이지만 치킨을 뜯고 피자를 먹어도 좋지만 우리의 위장은 텅텅 비어야 한다. 모든 것을 흡입해 버리는 블랙홀 같은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위를 가져야 한다. 집에서 나올 때 사나흘 집을 비울 테니 문단속 잘 하라고 하면 불길한 꿈을 꿨다고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집사람이 자꾸 붙잡지만 나는 단호하게 모든 것을 뿌리치고

 

  우리의 집결과 혁명적 행동을 눈치 채고 우리를 진압하려 군화소리가 천지를 울려도 심지어 우리를 향해 자동소총으로 난사해도 우리가 죽으면 좀비로 다시 태어나려는 결의가 있어야 하고 하이에나의 대세라는 믿음,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죽으면 또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달려가고 뒤를 이어 가는 하이에나로 하이에나의 인해전술로, 하이에나의 도살장 같은 세상이라도 견디며 가는

 

  당분간 우리가 하이에나라는 것을, 극비에 부치겠지만 사실 나는 극비에 부칠 필요가 없고 대놓고 청소에 나서면 모두가 청소에 따라 줄 것이라 믿으므로, 말끔히 청소한다고 해서 하이에나의 나라, 하이에나의 정부, 하이에나의 중앙이나 당국을 위하지 않으므로 청소만 된다면 사그리 첫눈처럼 녹아서 사라질 하이에나이므로

 

  한 때 나는 얼마나 하이에나를 경멸했던가. 비굴한 모습, 먹이를 훔치는 모습, 떼거리로 사자를 공격하는 모습, 수사자에게 하이에나 여왕의 목이 물려 절명할 때 느꼈던 쾌감,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다. 누가 사체를 청소하지 않으면 향기로운 초원이 펼쳐질까. 사자가 먹다 남긴 사체를 사자가 스스로 치우지 않는다. 하이에나는 자신의 이빨을 썩어문드러진 곳으로 박으며 운명에 순종하는 하이에나, 눈부신 하이에나, 초원의 성자인 하이에나가 된다.

 

  입영을 하듯 하이에나의 아지트로 가고 있다. 하이에나로 곧 나서지 못하면 하이에나 꿈을 꾸려고 초원에서 사자에게 쫓기다가 무리지어 사자를 쫓으며 끝없는 초원을 뛰어다니는 꿈, 배가 터지도록 먹고 병든 하이에나나 새끼에게 게워 먹이는 하이에나 꿈을

 

  M 버스를 타고 지금 삼성전자중앙문에서 출발해 금성아파트, 한국2차아파트, 광교호수공원입구, 원천교사거리, KT동수원지사, 소화초등학교, 광교중앙. 아주대역환승센터, 푸르지오 월드마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서울백병원. 안중근활동터, 서울시청, 신한은행본점을 지나 서울역으로 가야 한다. 광교중앙역에서 내려 강남까지 가는 고속지하철을 탈 수 있으나 그래도 서울 가는 풍경은 보아야 하고 한강도 건너고 남산 1호 터널도 지나야 하므로

 

  나는 겉은 아니더라도 속은 이미 하이에나다. 마음만이라도 굳게 다지며 슬럼가 같은 도시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려야 하고 살생부같이 청소해야 할 사람의 목록도 한 번쯤 고개를 맞대고 작성해야 한다. 모의작전도 해야 한다. 한 번 하이에나면 영원히 하이에나라며 결속력을 다지는 건배의 잔을 높이 들어야 한다.

 

  내가 나를 나로 보던 세상과 하이에나로 보는 세상은 완전 다르다. 그렇게 많은 이념서적을 뒤적이며 날을 세웠던 사상도 사상누각 같은 것이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보다 무엇을 먹어치운다는 것은 입맛이니 구미니 따지지 않고 해치운다는 것은 절망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 같으나 이제부터 나의 문장은 하이에나 문장, 하이에나의 노래, 보리밭 물결치고 석죽 나부끼는 언덕으로 하이에나의 산책, 하이에나가 부르는 마이 웨이

 

  내가 하이에나가 아니더라도 생은 가고 하이에나를 꿈꾸어도 생은 가고 내가 하이에나여도 생은 가고, 미친 듯 빠르게 혹은 천천히 남산타워를 스치는 구름처럼 광화문 담 위에 자라는 이끼의 속도처럼 가거나 때로는 가서 이루는 일보다 가는 일이 더 뜻이 있지만 한 번 쯤 터미널, 역, 항구를 떠나는 의미도 있고 간다는 것이 곧 돌아온다는 의미도 되지만 하이에나의 아지트로 천천히 오가고 장미가 지면 장미가 진다 매미가 울면 매미가 운다 하이에나로 울고불고

 

  하이에나로 전락해 가는 서로를 위로하거나 이미 하이에나로 퇴화된 서로에게 보내는 갈채, 이 시대의 메시아처럼 때로는 충복처럼 거세게 치는 세월의 파도를 넘어 때로는 구사일생으로, 하이에나로 가야 한다. 하이에나를 향한 지탄이 없겠나. 하이에나를 와해시키려는 권모술수가 없겠나. 하이에나의 박멸을 위해 현수막이 내걸리고 포상금도 걸릴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의지를 막는 것은 가당치 않는 일, 어불성설

 

  꽃 피는데 꽃놀이 가지 뭣한데요. 뭐 하러 미친 지랄하러 간데요, 무안을 주고 사전에 모든 것을 봉쇄하는 조짐이 보이지만 이 시대에 적격은 하이에나야. 하이에나가 나타나야 새로운 비전이 시작되는 거야. 어제 내린 비가 나긋나긋하게 내린 것도 실은 하이에나 털을 적시려는 비, 하이에나와 동행해 “이 거친 세상을 걸어라.”하는 비, 속까지 하이에나로 젖어라 는 뜻

 

  나는 하여튼 너에게 가는 하이에나야. 내가 너에게 간다는 것은 나를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간다는 것, 앞으로 우리의 세상은 없고 하이에나로 살아갈 날만이 있다고 생각해. 서로가 동반자이자 서로를 지주대삼아 쓰러지면 함께 쓰러지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고 쫓기면 함께 쫓기고 눈물도 공유하는 벗어날 수 없는 하이에나의 숙명으로 가는

 

  따지면 유전적으로도 너무 먼 하이에나, 기질적으로도 맞지 않으나 하이에나, 하이에나 하면 정다워져, 조심하세요. 하이에나 출몰지역이 아니라 우리의 하이에나를 만날 수 있다는 푯말이 세워지는 아지트로 자진 입대 하듯 전국방방곳곳에서 구국의 심정으로 영천장정 대전장정 광주장정 등처럼 여기저기서 모여들었으면, 지금은 청소가 필요한 시대, 청결이 우선되는 시절, 하여 앞으로의 상황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너에게 가는데 하필 하이에나라니 하며 너를 무시하는 처사라니 너무 음흉하고 비굴하게 생긴 하이에나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하이에나는 하이에나로서 충분히 고귀하므로, 은유의 하이에나도 상징적 하이에나도 하이 에나하면 아름답게 들리므로 별 아래로 노을을 스쳐 논두렁 밭두렁 같은 길을 걸어 버스를 타러가는 길, 항전에 나서는 나를 알아보는 듯, 수천 톤의 울음을 쏟아내는 경칩이, 끝없이 휘날리는 이팝나무 꽃, 꽃잎들

 

  청운의 꿈도 있고 장기 단기 숙원사업 계획도 있으나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밤하늘에 흩어진 수천 섬의 별마다 하이에나의 꿈을 새기며 네게로 간다. 가끔 하이에나처럼 짖으려는 본능이 살아나지만 섣불리 정체를 드러내거나 밝히지 않으며 세상을 청소해 꿈의 정토를 만들려고 하이에나를 빌미로 봉기의 횃불 높이 들어도 좋고 판을 갈아엎어도 좋지만 꿈은 순수해야 이루어지므로 세상을 청소하러 악취 나는 거리를 불도저로 밀어붙여도 좋고 비로 싹싹 쓸어버려도 좋고 아직은 작지만 단단한 하이에나의 꿈

 

  거듭 말하지만 놀라지 마라, 나는 너에게 가는 하이에나, 온몸에 힘차게 흐르는 하이에나의 붉은피톨, 흰피톨을 느끼며 하이에나로 맹활약할 도심과 거리를 보며 무릉도원을 찾아가듯 우리의 아지트가 될 공원의 집으로 간다. 나와 때를 맞춰 봉기하듯 여기저기서 하이에나가 우우 몰려들어도 좋지만 아직은 때가 일러 하이에나와 시민의 합일점에 이르러 악취가 사라진 공존의 공간을 만들 필요성을 스스로 느낄 때까지, 우리는 공동전선을 이뤄 하이에나의 서식지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끝나면 하이에나라는 이름을 버리고 우리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장소를 예비하는 것

 

  M 버스를 타고 하이에나는 간다. 법원 앞을 지나 광교를 통과해 출발이 절반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고 M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의 나날이 파란만장이라 해도 그것은 우리를 막지 못해, 파란만장할수록 더 단단하게 무두질 되고 담금질 되는 하이에나의 꿈, 세상아, 사람아, 사랑아, 보아라. 까까머리 같은 내가 M 버스를 탔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울 가는 길, 서울로 압송되어가는 봉준이의 심정으로, 때로는 뚝뚝 지는 녹두꽃의 심정으로, 청포장수의 심정으로

  하이에나로 가는 나를 너도 하이에나가 되어 내 목덜미를 뜨겁게 핥아주어도 좋지만 그러지 않아도 돼. 당분간 내가 너무 낯설 수 있으므로, 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진 후에 익숙해지는 것

 

  너는 우리의 아지트에서 네 존재를 빛내며 여왕 하이에나가 되어도 좋아. 모든 하이에나가 네게 머리를 조아리고 나마저 먼발치에서 너의 눈치를 봐도 좋아. 조직이 이뤄지기 전 체계가 잡히기 전에도 여왕, 잡힌 후에도 여왕이어야 우리의 일은 가능해. 근엄한 여왕, 우리의 여왕이란 인식이 뼈에 사무치게 뭇 하이에나를 작살내도 좋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잠깐 멈추는 M 버스, 아 저런 곳도 있구나. 힐끗거리며 나는 서울 역으로 간다. 서울 역에서 아지트로 넘어 가야 하므로 하이에나로 개명한 내가 자랑스럽게 간다. 강철도 물어뜯을 이빨을 감춘 채 식물성 꿈을 버리고 동물적 꿈을 꾸며 간다.

 

  이미 익숙한 길이지만 입장이 달라지니 더 비장해지는 길, 숱하게 켜진 도심의 불빛은 왜 저리도 추하게 보이냐. 야근하는 관광서의 불빛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하이에나니 복잡한 생각도 없이 그저 비 29를 몰고 융단폭격하고 나마저 자폭하고 싶은 한 시대의 울분을 곁에 앉히고 내가 간다. 한 마리 하이에나가 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6월호 발표

 

 


 

김왕노 시인

경북 포항에서 출생. 1992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박인환문학상 수상집』『사진속의 바다』, 『그리운 파란만장』,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게릴라』, 『이별 그 후의 날들 』, 『리아스식 사랑』,『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등이 있음.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디카시 작품상, 수원문학대상, 한성기 문학상, 풀꽃 문학상, 2018년 제 11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시작문학상 등 수상, 축구단 글발 단장, 한국 디카시 상임이사,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현재 문학잡지《시와 경계》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