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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애 시인 / 라일락 꽃 피는 우체통
대문 옆 라일락 꽃나무는 우체통으 닮았다
하루를 열었다 닫을 때도 꽃초롱 켜들고 동네밖 번져오는 향기로운 소문들
때로는 부음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지만
순결을 묻어둔 네 살냄새엔 애정의 꽃이 피기도 한다
이정애 시인 / 하루를 살아도
들 가까이 냇물 가까이 서로가 기대어 살고 있다는 것 모르면서 알게 되지
들에는 몸 풀어 새싹 돋아나고 냇가엔 젖줄 문 나무들 서로서로 어깨 겯을 때
거실창 환하게 열어 들도 산도 내것인듯 눈안에 채우면 부푸는 휘파람 소리
하루를 살아도 내 몇날은 행복한 그런날
이정애 시인 / 빈 항아리
장독 옆 빈 항아리
먹은 것도 없는데 부글부글 속이 탄다
바람 불면 바람으로 비 오면 비로 채우고
얼음 얼어 터질 것 같은 겨울엔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내 영혼의 빈자리 닫아걸 창 하나 달라고
밤마다 영혼에 불지르던 날
잘 익은 장맛 내는 어머니 보름달로 오셔서
빙그레 눈물 그림자 뿌리고 있네
이정애 시인 / 무엇이 이토록
문득 가슴 휭하게 쓸쓸해 오는 시간 나사 빠진 느낌
삶의 행간 겉돌다 내 몸 어디쯤 넝마 냄새날까 추락의 끝까지 내려놓는 영혼
무엇이 이토록 날 슬프게 하는 걸까
풀잎만도 못한 허세 지조로 삼고 살아가는 지금
가까이에서 멀리에서든 들려오는 조각난 삶의 얘기
하늘 우러러 계산도 없이 두드리는 문
자비의 한 말씀 듣고자 온 맘 다 비워내고 있다
이정애 시인 / 말
네 말이 후비고 간 자리 가파르게 울리고 간 풍경소리 속 깊이 드려다 본다
거침없이 던진 말 뼈처럼 허옇게 드러나 엉켰던 낡은 외로움이 무너져 내린다
봄보다 앞선 말 도사리고 있는 외로움의 분출 아닐까 혼자서 되새김질 하지만 오뚝이처럼 쓰러지고 일서서는 사이에도 오고가는 좋은 말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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