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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룡 시인 / 풋잠에 들다 ―하멜서신
이게 무슨 일인지 도대체 설명할 길 없습니다.
누구 하나 눈길 건네는 이도 따라오는 기척도 없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가도 언제나 제자리, 떠난 자리로 되돌아옵니다.
멀리 강진을 지나 마량포구까지 앞서 갔던 마음들도 너덜너덜 찢겨진 채 왼종일 쪼그려 앉아 나막신을 깎던 공방의 끌밥처럼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이건 악몽일 뿐이야 누군가의 꿈속에 끌려왔을 뿐이라고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지금 여기, 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한 백 년쯤이나 됨직한 의문들, 벗어날 길은 아예 없겠습니다.
신덕룡 시인 / 옻나무에 스치다 ―하멜서신
그냥 지나쳤을 뿐인데 온몸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따지고 보면 독毒이란, 도대체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이거나 끈적거리는 허연 진액이거나 핏빛 선명한 나뭇잎이거나 문풍지를 비집고 들어와 뼛속으로 파고드는 바람, 텅 빈 하늘에서 홀로 반짝이는 별빛이었다.
그리움도 마찬가지. 빼낼 수 없는 가시였고 꽉 다문 입술이거나 벌겋게 타오르는 저녁놀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나무 그림자 때로는, 온 산천을 휘젓고 다니던 봄밤의 꽃가루들……
그런데 나는, 나의 이름은?
마당귀로 몰리던 소소리바람 밤새도록 끙끙 앓아도 풀리지 않는.
신덕룡 시인 / 매일매일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캄캄한 길을 갈 때 귓불에 닿는 어둠의 숨결처럼 담벼락의 나무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몸집을 키웠다 두 팔과 다리가 쑥쑥 자라났고 배가 나오고 머리통은 내 키를 훌쩍 넘어 가로등처럼 늘어났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나를 뚫고 지나가자 발밑은 온통 하얗게 펼쳐진 가시밭이 되었다 유리 조각처럼 뾰족뾰족, 날카로웠지만 반짝이지는 않았다 머뭇거리는 사이 배불뚝이 어항이 되더니 입을 쩍 벌렸다
어제처럼 오늘도 지느러미 없는 나를 꿀꺽,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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