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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덕룡 시인 / 풋잠에 들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2.

신덕룡 시인 / 풋잠에 들다

―하멜서신

 

 

이게 무슨 일인지

도대체 설명할 길 없습니다.

 

누구 하나 눈길 건네는 이도 따라오는 기척도 없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가도 언제나 제자리, 떠난 자리로 되돌아옵니다.

 

멀리 강진을 지나 마량포구까지 앞서 갔던 마음들도

너덜너덜 찢겨진 채

왼종일 쪼그려 앉아 나막신을 깎던 공방의 끌밥처럼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이건 악몽일 뿐이야 누군가의 꿈속에 끌려왔을 뿐이라고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지금 여기, 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한 백 년쯤이나 됨직한

의문들, 벗어날 길은 아예 없겠습니다.

 

 


 

 

신덕룡 시인 / 옻나무에 스치다

―하멜서신

 

 

그냥 지나쳤을 뿐인데

온몸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따지고 보면 독毒이란, 도대체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이거나 끈적거리는 허연 진액이거나 핏빛 선명한 나뭇잎이거나 문풍지를 비집고 들어와 뼛속으로 파고드는 바람, 텅 빈 하늘에서 홀로 반짝이는 별빛이었다.

 

그리움도 마찬가지. 빼낼 수 없는 가시였고 꽉 다문 입술이거나 벌겋게 타오르는 저녁놀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나무 그림자 때로는, 온 산천을 휘젓고 다니던 봄밤의 꽃가루들……

 

그런데

나는, 나의 이름은?

 

마당귀로 몰리던 소소리바람

밤새도록 끙끙 앓아도 풀리지 않는.

 

 


 

 

신덕룡 시인 / 매일매일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캄캄한 길을 갈 때 귓불에 닿는 어둠의 숨결처럼

담벼락의 나무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몸집을 키웠다

두 팔과 다리가 쑥쑥 자라났고 배가 나오고

머리통은 내 키를 훌쩍 넘어 가로등처럼 늘어났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나를 뚫고 지나가자

발밑은 온통 하얗게 펼쳐진 가시밭이 되었다

유리 조각처럼 뾰족뾰족, 날카로웠지만 반짝이지는 않았다

머뭇거리는 사이 배불뚝이 어항이 되더니

입을 쩍 벌렸다

 

어제처럼 오늘도

지느러미 없는 나를 꿀꺽, 삼켜 버렸다

 

 


 

신덕룡 시인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1985년 《현대문학》에 평론, 2002년 《시와시학》에 시로 등단. 저서 및 편저로는 『진보적 리얼리즘 소설연구』, 『환경위기와 생태학적 상상력』,『생명시학의 전제』, 『초록생명의 길(1.2)』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소리의 감옥』, 『아주 잠깐』이 있음. 김달진문학상>과 경희문학상, 발견문학상 등을 수상. 계간 시전문지 『시와 사람』의 편집주간, 시낭송회 비타포엠 회장 역임. 현재 광주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