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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 시인 / 화살나무
나무들도 응전을 한다.
피톤치드라는 것도 실은 응전의 산물이다.
그렇게 새순을 또옥똑 따면 어떡합니까?
봄나물로는 최고라 했다.
가지마다 화살깃을 다는 까닭이 있었다.
가을이면 그리도 붉게 잎잎이 타오르는 까닭이 있었다.
윤효 시인 / 배꼽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대웅전도 조사당도 요사채도
사라지고 범종각 구리종도 자취 없이 사라지고
돌탑만이 남았다. 쑥대밭 한가운데 비바람이 지어준
가사를 들쳐 입고 돌탑만이 홀로 남았다.
윤효 시인 / 생명선
날이 풀리자 아파트 마당에 실금이 또 하나 늘었다.
어제는 비까지 내려 더 아프게 드러났다.
풀리지 않는 일 탓이겠으나 심란했다.
손바닥에 자주 눈이 갔다.
내내 뒤숭숭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풀 죽을 일이 아니었다.
실금을 따라 푸른 것들이 일제히 돋아나 있었다.
윤효 시인 / 세계문화유산
이슬람왕조의 세련된 건축과 정교한 조각으로 유명한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내밀한 안뜰에는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저런 장식을 모두 물리치고 오직
마당 넓이만큼의 사각 수조에 물을 받듯하게 모셔 놓고
있었다.
목마름이 이룩한 최고의 걸작이었다.
윤효 시인 / 한글날에 2
우리나라 프로구단은 열 개
두산, 삼성, 한화 넥센, 롯데 KIA, kt, LG, NC, SK
우리나라 프로야구단은 세 개 혹은 다섯 개.
윤효 시인 / 강원랜드
주식회사 강원랜드는 친절한 회사였다.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를 사내에 두고 있었다.
임상심리전문가 중에서도 박사학위 소지자를 일선에 배치해 놓고 있었다.
우리나라 도박의 중심 강원랜드는 참 친절한 회사였다.
윤효 시인 / 시론(時論)
평안도 태생 백석 시인의 「절간의 소 이야기」에 의하면,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이 있는 줄을 안다고" 하였다. "인간보다 영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풀에 관한 한 그야말로 전문가라는 것인데,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수백만 년 동안 한 오라기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 순한 눈빛을 이어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광우병도 그러면 될 일이다. 한 걸음조차 뗄 수 없는 형틀에 매어 놓은 고삐를, 그 꼬삐를 풀어주면 될 일이다. 그 튼튼한 네 발굽으로 다만 풀밭을 거닐게 하면 될 일인 것이다. "칠십이 넘은 노장"이 "치맛자락 산나물을 추며" 하는 이야기라지만, 곰곰 헤아릴 일이다.
윤효 시인 / 깜밥
퇴직하니 어쩌다 거리에서 때를 만나면 난감하다.
어디 들어가 혼자 밥 먹는 게 안 된다.
거르게 된다.
그럴라치면 꼭 빈속에서 달챙이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 하얀 행주치마 속으로 와락 달려 드느라 배고픈 줄은 까맣게 잊고 만다.
윤효 시인 / 태평가(太平歌)
추석 차례 올리고 아침상 물리자마자 며느리 걸음이 빨라졌다.
그래, 어서 올라가거라. 시어머니가 주섬주섬 음식을 담아 건넸다. 며느리는 마지못해 받아들었다.
며칠 후,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봉다리 풀어봤니? 그 돈은 우리 손자 옷이라도 한 벌 사 입히라고 넣은 거란다.
며느리는 할 말을 잃었다. 휴게소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그 검은 봉다리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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