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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몽구 시인 / 단단한 허공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8.

박몽구 시인 / 단단한 허공

 

 

설 앞두고 평촌아트홀에서 비엔나 왈츠를 보았다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에 맞추어

넓은 무대를 누비는 인형 같은 무용수

탄력 좋은 발판이라도 딛은 듯

허공을 가볍게 날아다닌다

바람 부는 대로 휘는 시누대를 심었을까

잘룩한 허리로 단단한 지상을 딛듯 누빈다

다뉴브강 굽이굽이 감아 돌듯

젊은 무용수는 선율에 맞춰

무대 위 허공을 평지처럼 통통 튀며 걸어가고

휜히 비치는 발레복처럼 새해는 활짝 열린다

 

그때 문득 보이지 않는 발판을

피아노 건반 누르듯 경쾌하게 딛어가는

무용수의 발레 슈즈에 시선이 닿았다

옥빛 천이 발등까지 우아하게 덮었구나 했더니

허공으로 높게 비약하면서

비로소 드러난 바닥이랑

슈즈의 뭉툭한 코가 폐타이어처럼 새까맣다

 

어린 무용수가 평지를 걷듯

가볍게 허공을 딛게 해준 것은

시누대처럼 잘록한 허리도 아니고

허고에 찰 달라붙도록 숨겨둔 자석도 아닌

옥빛이 까맣게 찌들도록 바닥을 누비는

피나는 연습이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새까만 바닥 감추며 허공을 차고 오르며

새해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곳에서

비 오듯 흘린 땀 몰래 삼킨 눈물을

밑천 삼아 온몸으로 여는 문이라고

검은 발레 슈즈가 묵언으로 말해 주었다

 

-「단단한 허공」전문, 박몽구 시집『단단한 허공』, 시와문화 시집40, 중에서

 

 


 

 

박몽구 시인 / 달항아리

 

 

그리운 것은 멀리 있을수록 좋다

만삭의 임부를 닮은

달항아리에 귀를 댄 채 김환기가 견딘 것은

뉴욕의 화랑가를 순례할수록

더욱 강도를 띠어가는 푸대접

객지 밥 깊어지면서 등이 붙는 배고픔

빈처와 함께 견디는 외로움만은 아니었으리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견디며

다섯 남매를 낳고도

다시 거뜬히 고구마밭에 나가고

다시 불룩 불러오는 어머니의 배 앞에서

그가 눈에 담은 것은

퍼내어도 퍼내어도 다시 넘치는

신안 앞바다의 해돋이

땅거미 짙어 오면 한낱 시궁창이지만

먼 바다에서 아침 해 돋을 때면

바라보기만 해도 배부른

밝고 따스한 백합들의 집이 되는

가거도 개펄

모진 발에 짓이겨질 때면

그대로 으깨어지는 모래성이지만

크게 팽팽한 바다의 품에 안기면

거친 파도가 결코 꺾을 수 없는

두텁고 푸근한 둥지가 되는

그리운 것들은 멀리 있을수록 큰힘이 된다

 

 


 

 

박몽구 시인 / 낡은 책들의 귀는 따뜻하다

 

 

섣달 그믐 앞두고 이삿짐을 싼다

산 공기로 낡아가는 폐를 씻어내자고

도봉산 아래로 옮긴 지 12년

집 늘려 가는 대신 아내의 늘어난 주름...

 

침대 대신 안방 천정 넘어

바닥까지 가득 쌓인 책들을 보며

보지 않는 책나부랭이만 줄여도

이삿짐 한 트럭 분 줄일 수 있다며 성화다

책을 사들이고 쌓느라

남들은 몇 번 뒤집을 동안

이사 한번 갈 수 없었다고

불만을 털어놓는 아내 곁에 쌓인

보이지 않는 성을 본다

 

IMF로 잡지사를 버리고 대학들을 떠도느라

한 학기를 넘길 때마다 빚이 늘어갔지만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동안에도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 주었던

책들은 때로 피붙이보다 더 따스했다

 

서울에서 쫓겨나 더 좁은 집으로 옮기려면

책짐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아내의 말 구멍난 물꼬처럼 흘려 들으며

주워온 라면박스들에

입주처를 갖지 못한 책들을 담는다

언젠가는 갑갑한 박스에서 꺼내

금싸라기처럼 반질거리는 햇살을 쬐어주리라

약속하며 구겨진 시집들의 귀를

신혼 때 이부자리 펴듯 조심스레 편다

 

 


 

 

박몽구 시인 / 태안사에 가서

 

 

시인 조태일 형의 탯자리가 있는

곡성 태안사 산그늘에 서서

생전 그와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돌아보면 그는 내게

따스한 품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약관에 열망하던 시인이 되어 찾았을 때도

대뜸 지하실에 내려가 문선공이 되라 했다

박석무 형의 소개장 너머 매끈한 책상을 꿈꾸던 나는

납 먼지가 폐결핵을 덧낼까 겁나

일주일도 못 채우고 추석 떡값을 챙겨

고향으로 내려온 뒤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오일팔로 책도 강의실도 빼앗긴 채

시인사로 형을 찾아갔을 때에도

그는 서지에서 돌아온 후배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모처럼 얻은 출판사의 조판비만

빨리 결제해 달라는 말만 몇 마디 건넸다

시인사에서 돌아오던 저물녘

마포강변 노을이 눈물처럼 번졌다

곡성읍에서도 몇 십리 되는 길

꾸불꾸불 달려와

태일형 탯자리 둘러싼 동리산 자락을 본다

가파른 가운데 빈 틈 없이 어깨를 감싼

연봉들을 보며

비로소 그가 생전에 삼킨 말을 알겠다

몇 차례 전화가 휩쓸어가고

좌우로 갈린 사람들 서로 갈린 전란에도

저 아스라한 산자락 아래 솔숲으로 덮듯

형의 속뜰이 엿보였다

작은 것에 흔들리지 말고

작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큰 길을 보라며

금방이라도 두터운 손 내밀 듯

영정 속에서 허이허이 웃고 있었다

 

 


 

 

박몽구 시인 / 송정리 국밥집

 

 

멀리 남아 있는 찻시간도 토막낼 겸

오랜만에 시장통 국밥집에서 장국을 만다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던 어린 나그네의 겨울

복어 알로 허기를 달래던 낭인 죽어서

손댈 수 없는 동태로 발견된

그 자리에 꿈쩍 않고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는

고향 국밥집에서 술국으로

녹이 슨 시간의 켜를 헤집는다

벼랑 같은 짐을 지다 온 일꾼들이며

떠돌이 장돌뱅이들이 지친 얼굴로 찾을 때마다

뜨거운 김 솟아오르는 술국에

내장이랑 비계를 가득 담아주던

손 큰 주모는 저 세상으로 가고

대를 이은 딸이 말아주는 국물 맛은 여전한데

좁은 읍내 길은 엉덩이부터 들이민 차들로 북적거리고

계단이 유난히 삐걱거리던 다방이 헐린 자리에는

네온사인 서글픈 모텔이 머쓱하게 서 있지만

아무 데도 마음 둘 자리 없다

유채꽃 향기 코끝 간질이던 논밭은

외지인들에게 팔려간 지 오래

아파트 창마다 얼굴을 내민 객지 바람은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금 고향을 지키는 것이라곤

시장통 국밥집 술국 내음과

신나게 겨울바람을 끌어안은 채

휘파람 소리를 내는 낡은 처마뿐

서울로 가는 기차 시간을 밀쳐놓은 채

술국에 비친 고향의 얼굴 뭉클하게 건진다

 

 


 

 

박몽구 시인 / 바흐를 들으며

 

 

진주 귀걸이를 한 여자의

티 없이 맑은 얼굴이다

그 여자의 손으로 빚어서

봉긋하게 부푼 빵이다

지친 어깨를 눅눅하게 덮쳐오던

피로 간수 빠지듯 사라지고

구상나무에 기대어 바라보는 저녁놀이다

프라하 여행 때 신새벽에

체코 여자가 레이스를 들치며

창턱에 내놓던 빨간 사르비아 화분

값비싼 장신구 같은 거

다 버리고

귀밑머리에 숨은 늙은 진주 한 알

모든 화려한 빛을 버린 광목에 입힌

쪽물 속으로 휘감겨 오는

감포 앞바다의 투명한 파도 소리

 

다섯 살때부터 고사리손으로 익힌

요요마의 활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듣는다

아름다움은 결코 화려하거나

누군가를 밀치고

내세워진 게 아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업고 안고 움켜쥔 채

교회의 성가대 및 셋방을 옮겨다니며

얼마나 반질거리는 햇볕을 갈망했을까

백여 년을 민들레 꽃씨처럼 눌려 지내다

비로소 한 줌 햇볕을 쬔 악보 위에

황인종의 크고 슬픈 눈을 겹쳐 본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듣는 저녁은

누가 찾아오지 않아도 풍성하다

 

 


 

박몽구 시인

1956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 영문과와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77년 월간 《대화》 誌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자끄린드 뒤프레와 함께』,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등의 10여권이 있음. 현재 '5월시' 동인이며 계간 『시와 문화』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