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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우 시인 / 창세기, 아홉 번째 날
거울이 손을 잡아당긴다 팔이 길어진다 거울 안으로 들어간 팔은 거울 안쪽의 견고한 벽에 박힌다 벽에 박혀 있는 팔을 붙잡고 계단이 거울의 천장으로 오른다 계단에 매달려 있는 사과가 떨어진다 떨어진 사과는 어느새 계단에 다시 매달려 있다 햇살을 받으면 팔은 분화되어 견고한 벽에서 팔들이 자라 나온다 팔들을 붙잡고 벽을 타고 오른 계단은 거울의 바닥에 도착한다 거울의 바닥은 거울의 천장이다 견고한 벽이다
박강우 시인 / 물새를 키우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의 가슴에 물을 쏟아 부었다 두 눈을 감은 채 팔을 내저으며 목만 내밀어 수조에 떠 있기도 했고 깨어진 유리병 바닥에 잠겨 잠들기도 했다 어떤 날은 파도에 휘말려 팔이 뽑힌 채로 접시에 놓여 있기도 했다 그런 다음 날엔 남은 다리만으로 길게 줄을 선 채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구름 위로 힘차게 날아올라 다시 온전해진 몸으로 지상으로 내려오는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박강우 시인 / 천사들의 비밀정원
그들이 소녀의 옷을 벗기면 소녀는 복제되기 시작하고 소년은 사과나무의 말로 이야기한다
복제된 소녀는 사과나무의 말이 싫어 귀를 막고 얼굴을 파묻어도 깃발은 자꾸만 높아지고 종소리는 끝없이 퍼져 나간다
사과나무의 말은 복제된 소녀를 언제든지 펼쳐 볼 수 있게 팔을 구부려 놓고 목을 기울여 놓고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종소리가 사라지고 사과나무의 말이 사라지면 소년은 복제된 소녀를 욕조에 담는다 팔이 펴지고 목이 펴지고 깃발이 붉게 물든다
소년은 벗겨진 소녀의 옷을 입어야 사과나무가 될 수 있다
시집『앨리스를 찾아서』(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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