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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영옥 시인 / 말을 복제하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1.

권영옥 시인 / 말을 복제하다

 

 

숲을 지나갈 때 운구차에 실린 어매는 말을 쏟아냈니더

입말은 가슴에서 일어나 밖으로 쏟아져도

밖의 소리는 외계가 아니었니더

감나무에 붙은 참매미가

오랜 세월 참았던 속을 한꺼번에 탁 터트리는데

어매 참

감나무 밑에는 말 껍데기가 수북했니더

그늘이 들마루를 덮을 즈음

어매는 청보리 들판을 눈에 넣고 있었니더

보리싹이 치근에 달라붙어

정신 어딘가에 쌓였던 이바구를

생마늘 엮듯 말을 엮어나갔니더

어매 이제 말 좀 그만하그라, 야야 니 인생 뭐 있는 줄 아나

내가 겉보리로 살아왔다 아이가, 구순 어매의 입에는

바람이 다 빠져버렸니더

입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찾겠다며

가슴 속으로 들어가 깊은 곳을 뒤지는 울 어매

그 속에서 딱따구리 한 마리를 건져 올리는데

말이 첫 울음을 시작하는 순간

어매는 운구차에 실려 먼 북쪽으로 달리고 그 좋아하던

핸드폰도 어매 손만 찾았니더

하도 우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봤더니

그곳에 메꽃이 낑겨 있었고

몸이 틀어져도 울 어매 보고 싶다는 말만 자꾸 했니더

 

 


 

 

권영옥 시인 / 지구본

 

 

고원에 이르자 수박이 커가는 것 같이 새가

지구본을 바라본다

 둥근 것의 환영이 빛을 뿌려 얻은

 또 하나의 행성에서 새가

 깊이에 무리수를 두며

 부리로 수박을 찍은 후 땅 깊숙이 들어간다

 붉은 강과 불의 혀를 만나고

 빛을 덮은 돌과 검은 유전 사이에서

 굶주린 거인을 만나는 순간

붉은 혀와 검은 그림자가 범람하는 땅속에서

시조새는 둥근 돌 하나를 물고 나온다

지구 속의 또 둥근 돌, 돌 속의 데인 화상

지구에는 상처 난 수박들이 너무 많다

지구본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았다

 

 


 

권영옥 시인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시집으로 『계란에 그린 삽화』 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청빛 환상』, 『모르는 영역』이 있음. 그밖의 저서로는 『한국 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등이 있음. 두레문학상 수상. 상지대학교, 아주대학교 외래교수 역임. 현재 신문사와 문학지에서 문학평론가로 활동, 인문학과 시를 강의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