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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인수 시인 / 고인돌 공원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1.

문인수 시인 / 고인돌 공원

 

 

저것들은 큰 웅변이다.

시꺼먼 바윗덩어리들이 그렇게

낮은 산자락

완만한 경사 위에 무겁게 눌러앉아 있다. 그러나

인부들은 느릿느릿 풀밭을 다듬다가 가장 널찍한

바위 그늘로 들어가 점심 먹고 쉰다. 쉬는 것이 아니라

나비 발 아래마다 노오란 민들레

낮별 같은 꽃이 연신 피어나느라, 반짝이느라

바쁘다. 지금 아무것도 죽지 않고

죽음에 대해 허퍼 귀 기울이지도 않으니 머쓱한

어른들처럼

군데군데 입 꾹 다문 바위들

오래 흘러왔겠다. 어느덧

신록 위에 잘 어울린다.

 

 


 

 

문인수 시인 / 인도소풍, 말라붙은 손

 

 

땔감으로 쓰는, 건디기라는 쇠똥덩어리가 있습니다.

쇠똥에 찰흙과 지푸라기 같은 걸 잘 섞은 다음

커다란 쟁반만하게 주물러 널어 말려 쓰는데요,

이 일은 주로 여인네들이 합니다. 그러니 이 쇠똥덩어리 마다엔 어김없이

눈 깊어 안타까운 그늘,

그 무표정한 얼굴의 야윈 손자국이 낭자하게 말라붙어 있지요.

 

현지의 어느 작은 마을 호텔 앞에서 그날 새벽

할 일 없는 한 사내와 손짓 발짓

상통하며 이 건디기불을 피워 봤는데요, 나는 문득

함께 못 온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돈 번다고 혼자 고생만 하는

늙은 아내의 월급 봉투에도 물론 이런 손자국

무수히 말라붙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매운 연기를 피해

이리 저리 고개 돌리며 자꾸 이 사내와 함께 찔끔거렸습니다.

 

 


 

 

문인수 시인 / 바다책, 다시 채석강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

밤마다 파도 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이다.

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 소리는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아 너라는 冊,

 

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

 

 


 

문인수 시인(1945-2021)

1945년 경북 성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중퇴. 1985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 1986)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문학아카데미, 1990) 『뿔』(민음사, 1992) 『홰치는 산』(만인사, 1999) 『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 『배꼽』(창비, 2008) 이 있음. 1985년 심상 신인상.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 2007년 제7회 미당문학상 수상. 2007년 제10회 가톨릭문학상. 2016년. 동리목월문학상 목월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