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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정 시인 / 구피 닮은 여자
어항이 생겨 구피를 사러 갔다
레인보우 선셋 미가리프가 숨어 있는 포트 수초 사이로 창 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머문다
수족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작은 구피 파란물이 일렁인다
물이 내 발목을 적시고 배가 뒤집힌 물고기들이 파닥인다
맑은 종소리 들리고 젖은 발이 걸어 들어와 멈춘다
수족관 물이 흘러 닿은 강가에 빨간 꼬리 구피 닮은 여자와 내가 서 있다
여자의 눈길이 강물을 따라 천천히 옮겨간다 한바다를 만나기 위해
안애정 시인 / 겨울 내장산에서
눈꽃 왜바람 타고 산으로 올라가니 낡은 오색들이 소리를 낸다
부처님 오신 날 등불을 밝혔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억지로 등 돌려세웠던 너의 어깨가 흔들리는데 지금에서야 나는 난타*가 되려 한다
한 번 스쳐 간 인연이 다시 닿으려면 몇 번의 겁 (劫)을 쌓아야 할까
* 난타: 부처님 생전에 가난한 여인 난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불을 밝혔다. 아침이 되자 다른 연들은 모두 꺼졌지만 난타의 등은 꺼지지 않았다
안애정 시인 / 성삼재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안개에 싸여 말 잃은 산 그리고 잿빛 하늘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하얀 안개를 맞으며 서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지리산이라 하였다 가장 높은 길을 따라 내가 멈춘 곳은 성삼재라 하였다 여름 햇살이 보이지 않아 찾았더니 산자락 아래 남원 정류장에 숨어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지리산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안개에 싸여 말을 잃은 성삼재에서
- 『구피 닮은 여자』(시산맥, 2018)
안애정 시인 / 선운사 연가
그녀를 품고 싶은 마음 송악 줄기에 붙이고 애기 단풍 담은 도솔천 따라갔네
남들은 동백꽃 보러 온다지만 꽃보러 온 게 아니니 그 꽃 졌다고 서운해 할 것도 없지
해넘이에 바위굴 앞을 지나는데 우리 사랑할까 그녀 말에 가슴으로 들어온 낙조대의 꽃노을
육백년의 시간이 뿌리내린 장사목 우듬지 되어 선운사 골짜기를 내려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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