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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곽문연 시인 / 정오가 기울어지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2.

곽문연 시인 / 정오가 기울어지다

 

 

  그녀와 마주 앉는다 따끈따끈 김 오르는 피자, 치즈가루 솔솔 뿌리는 그녀 검붉은 소스에 눈이 내린다 왼손의 은빛나이프와 하얀 손등에 반짝 정오의 햇살이 부서진다 조각난 마음은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주욱, 늘어나는 하트 모양의 피자, 정오가 지나가고 밀고 당기던 우리의 방향도 기울어졌다 그녀와 나의 경계선도 모호하다

 

  체리처럼 붉은 꽃잎이 오물거린다 그녀는 피자를 먹고 내 머리는 연애의 값을 계산한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그녀, 먹음직한 연애 한판에 눈빛을 밀고 당기는 시간, 마음은 오븐처럼 달아올라도 한판의 사랑은 늘 허기가 졌다 금세 식어 버릴  열정 앞에 우리는 번번이 골몰했다

 

  하나였던 시계바늘이 갈라서고 분침은 정오에서 점점 멀어진다…

 

 


 

 

곽문연 시인 / 공의 각

 

 

얼핏 보기엔 곡선이지만

보이지 않는 무수한 각을 감추고 있다

오랫동안 골프를 치다 보니

공이 내게 가르쳐 준 한 수

 

둥글게 치면 둥글게 굴러가고

모나게 치면 모나게 굴러간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되돌려 준다

 

이 단순명료한 법을 알면서도

몸 따로 마음 따로

내 손끝의 미세한 기울기와 힘에 따라

공은 모서리를 세우며

나를 거부한다

 

나는 공의 마음을 향해 집중한다

각을 피해

오늘도 힘차게 샷을 날린다

 

 


 

 

곽문연 시인 / 나의 사랑은 유칼리 숲에 살아요

 

 

나는 그를 애인이라 부르지만 그는

나를 애인이라 부르지 않아요

죽는 순간까지 유칼립투스만 그의 애인이지요

나는 언제나 그가 잠든 모습만 바라보고 있지요

실크보다 더 보드라운 몸을 쓰다듬고 싶지만

접촉에 까칠한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그가 눈을 뜨는 시간은 오직 먹는 시간 뿐

그의 눈에 닿기 위해 나뭇잎에 흐르는 바람이고 싶어요

잠자는 그의 몸을 껴안은 나뭇가지이고 싶어요

그가 잠에 취한 건 나뭇잎에 취했기 때문,

나를 보기 싫어서가 아니란 걸 알아요

이 지독한 편식증이 그를 잠재우지요

이제 나무에 매달린 아슬한 잠을 이해해요

그의 흰 팔 아래 함께 잠드는 법을 알았거든요

그를 닮아가는 일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내 마음은 코알라의 깊은 잠 속으로 스며듭니다

스무 시간을 자고나면

그 동안 유칼리 잎도 푸른 물이 오르겠지요

 

 


 

곽문연 시인

충북 영동에서 출생. 춘천대학 상학과 졸업. 중대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2003년《문학마을》로 등단. 시집으로『단단한 침묵』이 있음. 한국시인협회 회원. <다층사람들> 편집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