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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국현 시인 / 새벽에 깨어
비바람이 치는 새벽 잠든 아이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나란히 모로 누워 다리까지 같은 모양으로 올리고 두 아이 함께 잠들어 있다 얼마 만인가 나는 또 얼마만인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모습으로 새근거리며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무엇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던 열아홉 절망의 봄 바람에 맡기듯 나를 맡겼던 어두운 바다 집어등 환하게 밝히며 나서서 새벽 어스름을 등지고 조용히 돌아오던 고깃배 위에서 흔들리던 삶은 경건하고 두렵고 눈물겨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그 바다가 전하던 심연의 침묵이 웅웅거리며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에 잠겨 유영하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타고 그만 아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늦겨울 비바람에 마음이 흔들리는 새벽 가만히 열어본 아이들의 방 두 아이는 곤한 잠 속에 빠져 있고 나는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다
경건하고 따스하며 눈물겹고 두렵다 잠든 아이의 맨발을 통해 전해오는 삶은
여국현 시인 / 아이러니
몇 편의 어두운 영화를 연이어 보면서 뿌리 깊고 야비한 어둠과 악의 재현이 끔찍해 스크린 속 세계라는 사실에 안도하다가 같은 스크린이 담담하게 전하는 현실의 뉴스를 보며 영화 속 세계를 외려 그리워한다 틀에 박힌 권선징악 허구의 엔딩이라도 존재하는.
시집 『새벽에 깨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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