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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시인 / 십 센티
십 센티에도 매달립니다 사람은 일 밀리그램에도 매달려요 사랑은 십 센티, 내일은 일 밀리그램, 퀭한 밤거리에 저이는 매달려 있습니다
매달린 손끝이 툭, 매달린 입술이 툭, 매달려만 있겠다구요 툭, 막대는 짧아집니다
자아, 무얼 좀 버려야 합니다, 형씨 아직은 뜨거운 이 몽당불씨 끝에 매달려 버티려면
저이는 발꿈치를 듭니다 구두와 바짓단을 자릅니다 귀와 눈썹을 뗍니다 뒷목의 지퍼를 열고 머리뚜껑을 벗고 허연 생각을 쏟습니다
형씨는 아직 형씨로 보이는군요 다행입니까?
저이는 자신의 세목細目들을 일렬로 세웁니다 내일은 십 센티, 불씨는 일 밀리그램, 이쑤시개 가 버린 각목의 항목 중 가장 나중 것은 무엇인가?
재가 버린 풀잎의 항목 툭, 매달립니다
문저온 시인 / 기린과 크레인
기린 한 마리 훌쩍 상공에 목을 넣고 있다 목은 너무 튼튼해 굽힐 수가 없다 상공에는 뜯어 먹을 나뭇잎 하나 없다 사선으로 굳세게 뻗은 철골 끝 열린 모가지가
갓 태어난 공기와 맺히기 직전의 물방울을 핥고 있다
바닥의 풀을 뜯으려면
사지를 찢어야 한다
문저온 시인 / 폭우
죽순은 1에서 2를 꺼낸다 2에서 3을, 3에서 4를, 드디어 18에서 19를 꺼낸다
간밤 폭우 속 부릅뜬 기록원의 너덜너덜한 눈알
순은 19에서 18을 꺼낸다 18 속 17, 17 속 마침내 1을 꺼낸다
우후의 죽순은 직립한 뱀처럼 버틴다
성기를 뽑아들고 쩔쩔 매는 기록원의 너덜너덜한 눈금
너는 0에서 1을 꺼낸다 너는 0에서 10을 꺼낸다 우리는 다시 0에서,
죽순은 치솟고 꼭대기는 꼭대기
꼭대기는 꼭대기 밖에 없다
문저온 시인 / 서혜(鼠蹊) 서혜(鼠蹊): 샅. 두 다리의 사이. 몸에 다다르는 지름길.
여기가 아파요. 그는 거기를 보이고 싶어 한다. 그는 보이고 싶은 곳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거기를 보는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는 거기를 보이는 저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서혜(鼠蹊). 저 이상한 이름이 붙은 곳을 그는 애처로워한다. 쥐 한 마리가 달음박질할 것 같은 곳. 쥐의 작은 발이 재게 디뎌 간지럼 탈 것 같은 곳. 샅고랑을 달려 쥐는 어디로 가나. 쥐는 갈 수 있나. 쥐는 어디서 왔나. 그는 그의 쥐를 애처로워한다. 어깨를 꺼내 보이고 싶은 적 있었다. 네게. 고개 돌려 내려다보면 동그란 곳. 무릎도 팔꿈치도 몸의 관절은 죄다 잔주름투성이인데, 어깨는 펼친 채로 태어나고 접힐 일이란 없다는 듯 둥글고 팽팽하다. 그 벼랑에 내려앉아 본다. 입술을 대본다. 어떤 안도감. 둥근 알을 볼 때의 온전함. 둥근 알을 만질 때의 평온함. 그 비알에는 거칠고 모난 게 없어서 나는 비바람 먼지가 오래 찌든 것 같은 내 손이 내 발이 내 영혼이 수줍다. 이 둥근 낭떠러지. 나의 측면. 내 국경의 전망대. 정면으로 부닥치지 않고 등 뒤에서 찔리지 않을 것 같은 곳. 비껴 온전한 둥글고 윤나는 거기에 입술을 붙이고 싶었던 적 있었다. 어깨의 말. 어깨의 노래. 노래는 귀를 감아 타오를 것이다. 너의 측면. 네 국경의 전망대. 네 둥근 낭떠러지. 거기에 입술을 붙이고 싶었던 적 있었다. 너는 너의 보이고 싶은 곳을 지니고, 나는 그때 알아보았을까? 한 사람이 실없이 어여삐 여기는 생의 잡동사니. 애착해도 애착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고 빛바래는 것. 그는 초조해하다가 떠났다. 나는 그의 눈빛밖에 봐줄 게 없었다. 너는 초조해하다가, 떠났다, 어쩌면. 내가 이미 모르는 날에. 고샅에 입술을 붙이고. 다리를 감춘 고래처럼. 벗을 수 없는 검은 상복을 입고.
-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시인동네, 2019)
문저온 시인 / 문진(問診) 문진(問診): 의사가 환자에게 병에 대하여 물음. 병은 나보다 정확하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얼마나 오래되셨나요? 전에도 이런 적이 있으셨나요? 증상을 터놓은 이가 있으신가요? 얼마나 아프신가요? 어떨 때 심해지시나요? 그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자주 긴장하시나요? 마지막으로 화를 낸 게 언제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자주 찾아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무엇이 당신께 힘이 되어 주나요? 이 상태가 지속될 거라 믿으시나요? 자신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시나요? 제가 당신께 어떤 사람이길 바라시나요?
문저온 서사시집 『치병소요록』 중에서
문저온 시인 / 항강(項强) 항강(項强): 목 뒤가 뻣뻣하고 아파 잘 돌리지 못함. 어떤 것은 항상 내 뒤에 있다
뒤돌아볼 때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슬프지 않다. 다만 일그러진다, 슬프게. 앉은 채 왼쪽을 보아달라고 하자 슬프게 어깨를 틀려 한다. 오른쪽을 보아달라고 하자 다시 슬프게, 꺾이지 않는 목을 버티느라 등과 가슴이 뻣뻣해진다. 눈동자만 힘껏 돌아가다 되돌아온다. 나는 첫 문장을 수정하기로 한다. 뒤돌아볼 때 그는 아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표정은 마음에서 온다는 간명한 생각에 붉은 줄을 긋는다. 그는 아프고, 지금 그의 세계는 정면뿐이다. 척추를 세우고 그 위에 얹은 머리가 점점 커다래져서 어느 아침 목을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해바라기처럼. 나사를 좀 풀어주시든지, 머리를 가져가시든지, 부탁이에요. 해바라기가 말한다. 머리라면 제게도 있는 걸요. 나는 그의 목과 어깨에 박힌 나사를 풀어준다. 오른쪽, 왼쪽, 남은 슬픔을 확인하듯 해바라기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돌아본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어안(魚眼) 대신 우리는 가느다란 목을 가졌지만. 뒤란, 보이는 것일까? 긴긴 뒤를 데리고 걷는 사람, 우리는. 걸으면서 뒤를 낳는 사람, 우리는. 낳다가 멈춰서 잠시 돌아볼 때, 뒤란, 보이는 것일까? 등에 붙어 나와 함께 돌아보는 나의 뒤라는 것은? 나는 등 뒤로 돌아가 드는 칼로 내 등에 붙은 뒤를 발라낸다. 거죽을 발라내고 기름을 걷어내고 힘줄을 덜어내고 기기긱 칼끝이 뼈에 닿는 소리를 낼 때, 거기 세로로 박혀있는 1미터 60센티의 나사못 한 개. 나는 첫 문장을 다시 수정하기로 한다. 뒤돌아보려 했으므로 인간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불가항력을 맞이하는 표정이 우리의 얼굴을 덮친다.
시집『치병소요록』2019. 시인동네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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