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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하 시인 / 뼈아픈 밤
어느 저물 무렵 큰 솥에 물을 붓고 뼈를 고으시는 어머니 고으고 고아 온 밤을 다리신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며, 그 옛날 철없이 에미 품 떠나 사람살이, 그 불화의 몹쓸 병 끄실고 돌아와 간 곳 없는 세월의 그림자로 누워버린 나에게 어여 기운 차리라며 묵묵히 뼈를 고으신다 골수가 다 빠져나가 뼈가 녹아내릴 때까지 재탕 삼탕 은근한 불에 오래도록 곰삭여야 다시 몸이 된다고 고을수록 뿌우연 젖빛 골육수가 다려진다, 말 못할 회한도 서슬 푸른 노여움도 독한 슬픔도 저처럼 내 안에서 다리고 삭여내야 약이 된다 다시 살아나갈 힘이 된다 구멍 숭숭한 외롬의 뼈 독한 상처의 뼈 날카로운 욕망의 뼈 스치기만 해도 쉬이 부서지는 마음의 피멍든 뼈에 살을 걸치고, 모두를 죽이고 싶은 다스려지지 않는 毒心은 몇 달 몇 밤을 다려내야 한 사발의 빛 고은 藥이 될까요 어머니 더는 내줄 것도 없는 늙고 병든 어머니 솥 안에서 끓고 있다 대물림 같은 생, 뼈아픈 밤 살아오면서 나는 어머니를 모른다 모른다, 라고 몇 번을 부정했던가 그렇게 살아가면서 내 아이는 나를 또 몇 번을 부정하겠는가 삶의 패잔병처럼 홀로 돌아와 길게 누워버린 밤 가난한 솥 안에서 끓고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변변한 자식도 못되었던 나 다시 내 아이의 이렇다 할 에미도 못되었던 나, 의 울음 뼈 밤 깊도록 한 솥 안에서 오래도록 끓고 있다 난 괜찮다 괜찮다며 나도 괜찮다며 삭은 뼈마저 다아 내어주고 있다
여종하 시인 / 저무는 강가에서
다시 무슨 연연함으로 예까지 온 건 아니었다 그대여 예까지 걸어온 길이 길을 놓아주듯이 놓은 길 마저 지우듯이, 나 다만 길눈 어두워 길을 보지 못했음이니 길이 길을 만나 다시 길을 만드는 길은 얽매임이 아니라 길은 다만 흐르는 길일 뿐이라는 것을 오랜 죽음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서야 알았다 사랑이여, 때 늦은 탄식처럼 저무는 강가에서 내 눈물이 그치려니 다시 누가 우느냐 저무는 강을 향하여 저마다 돌아앉아 속으로 캄캄히 눈을 뜨는 저 먹돌들의 시간들 금 간 제 가슴을 안으로 그러잡고 어둠이 어둠으로 익어갈수록 제 안으로 기어이 눈을 뜨는 生滅의 고요 누군들 깊디 슬픈 침묵을 흔들어 깨울것인가, 예까지 걸어 온 길이 길을 놓아주듯이 놓은 길 마저 지우듯이, 저 깊은 강 깊은 속의 적멸보궁이 이끄는 저 한없는 목어소리 닳고 지워짐의 소리의 玄으로 나를 씻는, 어둠 속 떠오르는 저 달 둥글게 비 워 지 는 비워지며 숨쉬는 속으로 죽어가는 내 안의 그대를 나를 이제 放生, 放生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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