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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윤덕 시인 / 호박꽃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1.

양윤덕 시인 / 호박꽃

 

 

장미처럼 예쁘지 않아도

나는 밝게 피어있어요

 

장미꽃을 기준 삼아

못생겼다는 말로

나를 그늘 속으로 밀어내지 말아주세요

 

장난삼아

못생겼다는 말로

내 봉오리를

꽃을

꺾지 말아주세요

 

나는 호박을 만드는

자랑스러운 꽃이에요.

 

동시집『우리 아빠는 대장』2016. 청개구리

 

 


 

 

양윤덕 시인 / 죽녹원에 가서

 

 

죽녹원에 가서 보았다.

대나무들, 세로로 죽죽 자라는 것 같지만

죽을 때에는 모두 가로로 쓰러지는 것을

손끝에 닿는 짧은 숨소리

억센 재료들을 고분고분 구부려

바구니를 엮는 노인을 보았지.

가로와 세로를 엇갈려 유용한 무늬를 만드는 것을

그것이 포개지는 호흡과 호흡이라면

하나의 무늬를 향해 서로 견디면서

맥박의 리듬으로 엮이고 있다는 것.

알고 보면 허공이라는 곳도

사방의 바람이 엇갈려 촘촘해지는 곳 아닌가.

나의 동쪽에는 다정한 자매들이 살고

북쪽엔 이미 죽은 사람들

다복다복 살고 있지.

결과 결을 엮어

서로 기댄 형식들로 유대한다.

음푹한 깊이가 끼어들어 둥글어진,

서로 엮여 둥글어진, 손끝이 아프면서 둥글어진,

표정이란 무늬를 만들고

하나로 엮여 서로 늙어가는 사람들.

아무리 촘촘히 엮어도

주르륵 물이 빠져나가는 바구니 같다.

푸른 대숲은 한여름의 굳건한 골조,

새의 울음과 햇살 들이부어 지은

여름용 가옥 같다.

빈한했던 내 신혼의 집 같은 대숲

던져도 절대 깨지지 않는 가로와 세로를

여태 엮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죽녹원에 가서

모여 사는 이유를 보고 왔다.

아마 나의 결혼기념일 날이었을 것이다.

 

 


 

 

양윤덕 시인 / 상처_아버지

 

 

밥을 먹다가 상처 하나 씹히네

 

썰렁한 방에서

찬밥덩어리 돌처럼 잡수시던 아버지

야, 너희 집 밥은 참 달고 맛있다

차지고 윤기가 도는구나

이게 찹쌀인겨, 도대체 무슨 쌀인겨

하시며 한 수저 더 뜨셨지

 

내 가슴이

송곳날 같은 안타까움에 사정없이 긁혔지

 

지금 계신 자리는

평생 앉아 계시던 아랫목보다 따뜻할까

꿈에서 뵐 적마다

늘 웃음 많으신데

 

뜨신 밥 한 끼

더 해 드릴걸

마음 한구석에 먹구름으로 꽉 몰려 있네

 

 


 

양윤덕 시인

1960년 전북 옥구에서 출생.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전공. 1994년부터 문단활동을 시작하여 2008년 시집 『흐르는 물』을 출간. 2012년도 계간 《시와 소금》에서 시부문 신인상을 수상. 시집 『흐르는 물』, 『배나무 가지에 달팽이 기어간다』와 동시집 『우리 아빠는 대장』 등을 펴냄. 2018년도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한국문인협회/국제PEN한국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