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리 시인 / 시작 연습(詩作鍊習)
엊저녁 난바다로 무작정 출항한 나의 백지선白紙船 해리호海里號 거친 물결을 밀고 나아갔다
오늘 꼭두새벽 빈배로 귀항했다
물고기 한 마리 구경도 못한 채
험란한 바다에서 흔들리다 파도와 달빛만 가득 싣고
축 처진 백기를 들고 투항하듯 쓸쓸한 귀항 나의 배는 허공 만선이었다.
홍해리 시인 / 詩를 찾아서
일보 일배 한평생 부처는 없고 연꽃 속 그림자 어른 거릴뿐.
풍경소리 천릿길 오르고 올라 절 마당 닿았는가 보이지 않네.
홍해리 시인 / 명창정궤
살기 위하여 잘 살기 위하여 쓰지 말고,
죽기 위해 잘 죽기 위해,
쓰고, 또 써라.
한 편 속의 한평생, 인생이란 한 권의 시집을!
홍해리 시인 / 정곡론(正鵠論)
보은 회인에서 칼을 가는 앞못보는 사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지요 귀로 보지요 날이 서는 걸 손으로 보지요 그렇다 눈이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것 언제부턴가 슬몃 보이기 시작하고 못 듣던 것도 들린다 눈 감고 있어도 귀로 보고 귀 막고 있어도 손이 보는 것 굳이 시론詩論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 빼어난 시안詩眼이다 잘 벼려진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홍해리 시인 / 시안(詩眼)
한 권의 시집을 세우는 것은 시집 속 수십 편의 시가 아니라 한 편의 빼어난 시다.
한 편의 시를 살리는 것은, 바로, 반짝이는 시의 눈이다.
스스로 빛나는 시의 눈빛!
그 눈을 씻기 위해 시인은 새벽마다 한 대접의 정화수를 긷는다.
홍해리 시인 / 꿈
하늘을 안고 땅을 업고 무한 공간 속을 날아가고 있었다
날아도 날아도 제자리였다
겨울이었다
꽁꽁얼어붙은세상에서시인이라는 수인명패를달고있는사람들이비명을 치고있었다바락바락발악을하고있었다 모두가꿈을꾸고있는지도모르고있었다
날개가 너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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