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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인 시인 / 너와집 한 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9.

김명인 시인 / 너와집 한 채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질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은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시집『물 건너는 사람』(세계사, 1992)

 

 


 

 

김명인 시인 / 겨울 오이도

 

 

사당역에서 전철로 한 시간,

종점에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도 한참을

더 가야 하는 오이도, 죽은 임영조가

타고 내리던 시 속에 섬으로 가둬놓고

끝내 부리지 못했던 종점,

그 「오이도」가 첫눈처럼 귓가에 떠돈다

각자의 세월로 이어지다 가라앉다가

십 수 년 후딱 지나가버린 갯머리에 멈춰 세워

다시 섬으로 만나게 하는 오이도

일찍이 나는 시화호에 매달린 그곳으로

학생들 끌고 유람 간 적 있지

간척지 상가에서 바지락국수를 후룩거리면

물 빠진 개펄로 흐릿하던 건너편 화성,

거긴 로켓으로나 닿을 수 있다고,

그나 나나 시절은 예제로 촌스러운데

그걸 끝내 벗지 못 해서 티 맑은 사람,

사당역에 내리니 무슨 유행병인지

혹한에 승객들 듬성듬성한데

오이도 행 전철에 그가 막 오른다

온통 귀 밝은 웃음으로나 혼자 들뜨려고

겨울조차 따뜻한 오이도,

“내 마음 자주 뻗는 외진 성지”둘러보려는가

 

 


 

김명인(金明仁, 1946~ ) 시인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 1973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출항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1973』 동인을 거친 그는 김창완 · 이동순 · 정호승 등과 함께 『반시』 동인에 참여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임. 그는 이제까지 『동두천』(1979) · 『머나먼 곳 스와니』(1988) · 『물 건너는 사람』(1992) ·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 『바닷가의 장례』(1996) · 『길의 침묵』(1999) 등 여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