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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상 시인 /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30.

구상 시인 /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이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3』(조선일보 연재, 2008)

 

 


 

 

구상 시인 / 병상우음(病床偶吟)

 

 

병상에서 내다보이는

잿빛 하늘이 저승처럼

멀고도 가깝다.

 

돌이켜 보아야

80을 눈앞에 둔 한평생

승(僧)도 속(俗)도 못 되고

마치 옛 변기(便器)에 앉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살아왔다.

 

이제 허둥대 보았자

부질없는 노릇......

 

어느 호스피스 여의사의

"걱정 마세요. 사람도 죽으면

마치 털벌레가 나비가 되듯

영혼의 날개를 펼칠 것이니까요"

라는 말이 저으기 위안이 된다.

 

병실 창문으로

오직 보이는 저 하늘,

 

무한히 높고 넓고 깊은

그 속이나 아니면 그것도 너머

그 어딘가에 있을 영원의 동산엘

 

털벌레처럼 육신의 허물을 벗어 놓고

영혼의 나비가 되어 찾아들 양이면

내가 그렇듯 믿고 바라고 기리던

그 님을 뵈옵게 됨은 물론이려니와

 

내가 그렇듯 그리고 보고지고 하던

어머니, 아버지, 형, 먼저 간 두 아들과 아내

또한 다정했던 벗과 이웃들을 만나서

반기고 기쁨을 나눌 것을 떠올리니

 

이승을 하직한다는 게

그닥 섭섭하지만은 않구나.

 

 

 


 

구상(具常 1919년-2004년) 시인. 언론인

본명 구상준(具常浚). 호(號)는 운성(暈城). 1919년 9월 16일 일제 강점기 경성부 출생. 1941년 일본대학 종교과를 졸업.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에서 펴낸 동인시집 〈응향 凝香〉에 〈길〉·〈여명도 黎明圖〉·〈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 그러나 작품들이 강홍운·서창훈 등의 시와 함께 회의적·공상적·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부터 '반동작가'로 몰리자 이듬해 월남. 〈백민〉에〈발길에 채인 돌멩이와 어리석은 사나이〉(1947)·〈유언〉(1948)·〈사랑을 지키리〉(1949) 등을 발표, 〈영남일보〉·〈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 1951년 첫 시집 〈구상시집〉을 펴냈고, 1956년 6·25전쟁을 제재로 한 시집 〈초토의 시〉를 펴내 1957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