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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용목 시인 / 민들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

신용목 시인 / 민들레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

 

 


 

 

신용목 시인 / 공터에서 먼 창

 

 

내가 가장 훔치고 싶은 재주는 어둠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저녁의 오래된 기술.

 

불현듯 네 방 창에 불이 들어와, 어둠의 벽돌 한장이 차갑게 깨져도

허물어지지 않는 밤의 건축술.

 

검은 물속에 숨어 오래 숨을 참는 사람처럼,

 

내가 가진 재주는 어둠이 깨진 자리에 정확한 크기로 박히는,

슬픔의 오래된 습관.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 2017)

 

 


 

 

신용목 시인 / 별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罪(죄)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罪가 나를 씻어주겠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창비.2007

 

 


 

신용목(愼鏞穆) 시인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전공.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의 끝 거창』 등이 있음. 백석문학상, 노작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등을 수상. 2020년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