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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근배 시인 / 찔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

이근배 시인 / 찔레

 

 

창호지 문에 달 비치듯

환히 비친다 네 속살꺼정

검은 머리칼 두 눈

곡두서니 물든 두 뺨

사랑 눈 하나 못 뜨고 헛되이 흘려버린 불혹

거짓으로만 산 이 부끄러움

네게 던지마 피 걸레에 싸서

희디흰 입맞춤으로 주마

내 어찌 잊었겠느냐

가시덤불에 펼쳐진 알몸

사금파리에 찔리며 너를 꺾던

새순 돋는 가시 껍질 째 씹던

나의 달디단 전율을

스무 해전쯤의 헛구역질을

 

<2004년>-『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30』(조선일보 연재, 2008)

 

 


 

 

이근배 시인 / 살다가보면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살다가 보면》시인생각.2013

 

 


 

이근배 시인

1940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김동리, 서정주의 창작지도 받음. 1961~64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시조, 동시 등이 당선. 저서로는 시집으로 『노래여 노래여』,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장편서사시 『한강』,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등이 있음. 제2회, 제3회 문공부 신인예술상,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 은관문화훈장 수훈. 『한국문학』 발행인 겸 주간, 『민족과 문학』, 『문학의 문학』 주간 및 한국시조시인협회장, 한국시인협회장 등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