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시인 / 맨홀
지하로 내려간 인부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맨홀을 빠져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어둠과 환기되지 못한 퀴퀴한 냄새가 바닥에 깔려서 견디기 힘들어도 인에 배겨서 냄새도 모른 채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공간 나는 그곳에서 돈을 벌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때로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내려가는 물소리들 듣고 그 물소리가 어둠 속에서 무료함을 달래 주기도 합니다
때가 되면 내려가고 때가 되면 올라와서 식사를 해결하고 올라온 김에 가족에게 전화도 해 봅니다
지하에는 많은 선이 지나가고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의 대화가 지나갑니다 교신이 삭제된 지점을 찾아서 수선하는 것이 나의 일이며 그곳에서 가장 행복한 나를 발견 합니다
어두운 공간 속으로 들어 간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면 혹시라도 모를 불길함이 엄습 해옵니다 자꾸만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오래된 습관입니다
거리를 거닐다가 맨홀을 밟는 것은 아찔한 순간입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맨홀을 지나갈 때는 밟지 않고 돌아서 갑니다 맨홀 속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늘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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