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 시인 / 세상의 등뼈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시집『와락』(창비, 2008)
정끝별 시인 / 펭귄 연인
팔이 없어 껴안을 수 없어 다리가 짧아 도망갈 수도 없어
배도 입술도 너무 불러 너에게 깃들 수도 없어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껴안고 서 있는 여름 펭귄 한 쌍
밀어내며 끌어안은 채 오랜 세월 그렇게
서로를 녹이며 서로가 녹아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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