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인 / 제부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면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시집『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이재무 시인 / 귀
귀는 주장하지 않는다 귀는 우리 몸의 가장 겸손한 기관 귀는 거절을 모른다 차별이 없다 분별이 없다 눈과 코와 입이 저마다 신체의 욕망과 감정을 경쟁하듯 내색하고 드러낼 때 귀는 몸 외곽 외따로 다소곳하게 서서 바깥의 소리만을 경청하며 운반하느라 여념이 없다 입구가 출구이고 출구가 입구인 눈 코 입과는 달리 입구의 운명만이 허용된 귀 오늘도 어제처럼 고저장단의 소리를 소리 없이 실어 나르고 있다
-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이재무시인, 천년의시작,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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