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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노해 시인 / 꽃이 온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4.

박노해 시인 / 꽃이 온다

 

 

날이 가물어

땅이 마른다

나도 마른다

코로나 검은 손에

만남도 가물어지고

살림도 말라간다

한줄기 단비가 오시고

서늘한 밤비가 내리자

6월의 귀인이 걸어온다

꽃이 온다 꽃이 와

수국 수국 꽃이 온다

백합 백합 꽃이 온다

접시 접시 꽃이 온다

수심 어린 얼굴마다

마스크를 뚫고서도

꽃이 와라 꽃이 와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좋은 날도 예뻤지만

힘든 날엔 더 아름다웠지

꽃이 필 때도 멋있지만

꽃심 밀어올릴 때도 눈부셨지

꽃이 온다 꽃이 와

수국 수국 꽃이 온다

망울 망울 밀어 온다

두근 두근 네가 온다

 

 


 

 

박노해 시인 / 가리지 마라

 

 

너의 눈감음으로

세상의 모든 새벽을 가리지 마라

 

너의 둔감함으로

세상의 모든 새싹을 가리지 마라

 

너의 눈부심으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가리지 마라

 

너의 체념으로

세상의 모든 진실을 가리지 마라

 

너의 절망으로

세상의 모든 희망을 가리지 마라

 

 


 

박노해 시인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16세 때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년 스물일곱 나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1989년, 분단 이후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