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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현미 시인 / 어머니의 우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5.

문현미 시인 / 어머니의 우물

 

 

한 번도 살얼음이 낀 적 없다

 

언제 마중물을 부을 때가 있을까

도무지 수심을 알 수 없다

 

가끔씩

깊고도 맑은 나이테가 스치고

숱한 협곡을 건너온 구름이 지나가고

 

누구나 두레박줄 내려

목마른 생의 노숙

푹 -

적시고 싶은

 

세상 지도에 없는

단 하나의 희망, 천길 심연의

 

 


 

 

문현미 시인 / 어미새의 날개는 젖지 않는다

 

 

타이어를 녹이는 땡볕 아래

몇 차례 희미한 곡선이 힐끗

 

어느 새 소낙비 쏟아지기 시작하고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새, 기어이

빗속을 뚫고 부지런히 둥지를 찾는다

 

뻐꾸기 새끼들 빵긋빵끗

작은  주둥이에 푸른 물이 배어드는데

 

어서 먹고 휠휠 날아라!

 

어미의 오목한 눈방울에 담긴

가장 어여뿐 기도

 

 


 

문현미 시인

부산 출생. 부산대 국어교육과 졸업. 독일 아헨대학교(RWTH) 문학박사 취득. 1998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기다림은 얼굴이 없다』, 『칼 또는 꽃』, 『수직으로 내리는 비는 둥글다』, 『가산리 희망발전소로 오세요』, 『아버지의 만물상 트럭』『그날이 멀지 않다』 등. 2008년 박인환문학상, 2011년 크리스천문학상, 2012년 시외시학 작품상, 2014년 한국기독시문학상 수상. 독일 본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역임. 현재 백석대학교 및 백석문화대학교 도서관장, 山史현대시100년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