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시인 / 무더위의 시
너는 시원한 바다를 보고 어찌 풍덩 뛰어들 생각만 하고 있느냐.
네가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아름답고 자유로이 바다 속을 누비고 놀던 천하태평인 고기들에게 원자폭탄과도 같은 으시시한 공포를 주고 다시 말하면 목숨을 단축케 하고 그것들은 다시 영원을 향한 더할 나위없는 순수한 리듬을 뒤흔들며 깨뜨리고 있는 줄을 깜빡 잊고 있느냐.
더위를 참고 견딜 수 있는 아, 조금은 땀을 흘리는 일이 지금 너에게 주어진 제일 큰 시를 살리는 길에 직결되는지고.
박재삼 시집 『사랑이여 』,[실천문학사]에서
박재삼 시인 / 무제(無題)
산은 항상 말이 없고 강은 골짜기에 갈수록 소리내어 흐른다. 이 두 다른 갈래가 그러나 조화를 이루어 얼굴이 다르지만 화목한 영위(營爲)로 나가고 있음을 본다. 세상이 생기고부터 짜증도 안내고 그런다. 이 가을 햇빛 속에서 단풍빛으로 물든 산은 높이 솟아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반짝이는 노릇만으로 그들의 존재를 없는 듯이 알리나니 이 천(千)날 만(萬)날 가야 똑같은 쳇바퀴 같은 되풀이의 일월(日月) 속에서 그러나 언제나 새로움을 열고 있는 이 비밀을 못 캔 채 나는 드디어 나이 오십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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