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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다형 시인 / 한정판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5.

전다형 시인 / 한정판

 

 

 뼈대도 심장도 없는 구름이 낳은 얼고 녹는 눈먼 사람 피가 그늘진 사랑

 

 시한부, 한 철만 살다간 제 속 끓인 사랑과 정들지 말자 너무 쎄게 껴안진 말자 피 말릴 사람 눈 속 굴리면 자꾸 자라는 사람 반기와 금기, 마구 나를 굴리고 논 사람 눈멀게 한 사람이 사라지고 눈뜬장님 사라지고 냉가슴 오래 앓아야 했다 눈 둑 넘어진 사랑이 가슴 밖에서 녹은 사람이 눈밖에서 질척거렸다 빙점을 앓는 한데 사람 치명에 놀아난 눈사람

 

 너는 봄에 녹고 나는 네 안을 평생 살 사람

 

《상상인》 2021. 1월호

 

 


 

 

전다형 시인 / 무릎경전

 

 

그는 자벌레다

무릎 걸레로 반성문 쓴다

케렌시아'

에 웅크린 주다반탁가"

자기가 자기에게 드는 겸손한 백기

얼룩에 머리를 조아린 고백

풀풀 괄호 밖 핑겟거리가 수북하다

위장을 풀었다 펴는 자벌레

눈금 밖을 벗어난 자벌레의 배밀이

갖은 시행착오와  잘잘못을 물걸레로 훔치자

부끄러움이 환하게 돋았다

샅샅 무릎으로 ~결 . 점을 지우려다

마루판 선명하게 남은 결이 숨은 때를 짚었다

물걸레질은 자신을 버리는 행위

제 안의 옹이를 지우는 일

촉슬, 더 깊이 끓어야겠다

물걸레로 읽은 주다반탁가 무릎경전!

 

' 스페인어로 나만의 안전한 장소를 뜻한다

" 부처의 제자

 

 


 

 

전다형 시인 / 문신

 

 연두, 저 여린 새싹이 온 세상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연초록 힘줄이 툭 툭 불거진 숲, 허공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우듬지 끝에 맨발로 나앉은 햇살이 오동통하다 바람이 연초록 우듬지에 초록 양말을 신겨놓았다 버들강아지 아랫배가 한 뼘 부풀어 올랐다 몸피 터진 수양버들 가지 그늘을 털어냈다 물살끼리 멱살 잡던 겨울 강 물목을 풀었다  두근두근 숲이 뛰었다  덩달아  세계 바깥으로 뻗은 길이 자랐다 숲의 뿌리가 더 깊이 내렸다 울림통   큰 소의 물소리 깊어졌다 몸은 숲을 들인 흔적으로 그득했다

 

 


 

 

전다형 시인 / 택배

 

 

불룩한 가을 맨발로 맞다

 

잘 익은 햇사리(舍利師利事理) 도착했다

 

착불이다

 

겨울이 먼저 후끈 달아올랐다

 

 


 

 

전다형 시인 / 리좀

 

 

바람(風)이 이삿짐 싼다

 

우주를 모시는 게르 한 채

 

전 재산 탈탈 털고 뼈로 쓴 혈서

 

영토를 넓히는 민들레 홀씨의 방식

 

앉은 자리가 다 꽃방석

 

부웅 바람(希望)이 시동을 건다

 

 


 

 

전다형 시인 / 동해남부선

 

 

고장 난 자리

 

이道  道 불발

이빨 나간 바디

 

재갈과 자갈 문

침묵과 침목 사이 징검다리

 

칙칙폭폭

일거수 일투족 혀 차다

 

전전반측 길길 뛰어道

오道 가道 못 한 제자리

 

폐선, 주저앉은 사다리

 

 


 

전다형 시인

경남 의령 출생.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수선집 근처〉가 당선되어 등단. 2012년 첫 시집 「수전집 근처」. 2012년 제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부산 부경대학교 대학원 박사 수료. 연구저서로 「한하운 시의 고통연구」. 2020년  시집 「사과상자의 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