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 / 한정판
뼈대도 심장도 없는 구름이 낳은 얼고 녹는 눈먼 사람 피가 그늘진 사랑
시한부, 한 철만 살다간 제 속 끓인 사랑과 정들지 말자 너무 쎄게 껴안진 말자 피 말릴 사람 눈 속 굴리면 자꾸 자라는 사람 반기와 금기, 마구 나를 굴리고 논 사람 눈멀게 한 사람이 사라지고 눈뜬장님 사라지고 냉가슴 오래 앓아야 했다 눈 둑 넘어진 사랑이 가슴 밖에서 녹은 사람이 눈밖에서 질척거렸다 빙점을 앓는 한데 사람 치명에 놀아난 눈사람
너는 봄에 녹고 나는 네 안을 평생 살 사람
《상상인》 2021. 1월호
전다형 시인 / 무릎경전
그는 자벌레다 무릎 걸레로 반성문 쓴다 케렌시아' 에 웅크린 주다반탁가" 자기가 자기에게 드는 겸손한 백기 얼룩에 머리를 조아린 고백 풀풀 괄호 밖 핑겟거리가 수북하다 위장을 풀었다 펴는 자벌레 눈금 밖을 벗어난 자벌레의 배밀이 갖은 시행착오와 잘잘못을 물걸레로 훔치자 부끄러움이 환하게 돋았다 샅샅 무릎으로 ~결 . 점을 지우려다 마루판 선명하게 남은 결이 숨은 때를 짚었다 물걸레질은 자신을 버리는 행위 제 안의 옹이를 지우는 일 촉슬, 더 깊이 끓어야겠다 물걸레로 읽은 주다반탁가 무릎경전!
' 스페인어로 나만의 안전한 장소를 뜻한다 " 부처의 제자
전다형 시인 / 문신
연두, 저 여린 새싹이 온 세상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연초록 힘줄이 툭 툭 불거진 숲, 허공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우듬지 끝에 맨발로 나앉은 햇살이 오동통하다 바람이 연초록 우듬지에 초록 양말을 신겨놓았다 버들강아지 아랫배가 한 뼘 부풀어 올랐다 몸피 터진 수양버들 가지 그늘을 털어냈다 물살끼리 멱살 잡던 겨울 강 물목을 풀었다 두근두근 숲이 뛰었다 덩달아 세계 바깥으로 뻗은 길이 자랐다 숲의 뿌리가 더 깊이 내렸다 울림통 큰 소의 물소리 깊어졌다 몸은 숲을 들인 흔적으로 그득했다
전다형 시인 / 택배
불룩한 가을 맨발로 맞다
잘 익은 햇사리(舍利師利事理) 도착했다
착불이다
겨울이 먼저 후끈 달아올랐다
전다형 시인 / 리좀
바람(風)이 이삿짐 싼다
우주를 모시는 게르 한 채
전 재산 탈탈 털고 뼈로 쓴 혈서
영토를 넓히는 민들레 홀씨의 방식
앉은 자리가 다 꽃방석
부웅 바람(希望)이 시동을 건다
전다형 시인 / 동해남부선
고장 난 자리
이道 道 불발 이빨 나간 바디
재갈과 자갈 문 침묵과 침목 사이 징검다리
칙칙폭폭 일거수 일투족 혀 차다
전전반측 길길 뛰어道 오道 가道 못 한 제자리
폐선, 주저앉은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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