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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형만 시인 / 우리가 원하는 것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5.

허형만 시인 /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 모두의 집인 이 푸른 지구에서

형제, 자매들이 코로나로

고통 받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

 

이웃이 이웃을 경계하고

서로의 만남을 두려워하며

살면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등 돌려 미움의 칼을 가는 것

그것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 이 시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세상에서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너와 나 서로 토닥여주는 위로와 평화다.

별 같은, 꽃 같은, 희망이다. 사랑이다.

 

 


 

 

허형만 시인 / 행복

 

 

지리산에 오르는 자는 안다

천왕봉에 올라서는

천왕봉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천왕봉을 보려거든

제석봉이나 중봉에서만

또렷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매한가지여서

오늘도 나는 모든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

순해진 귀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행복해 하고 있다.

 

 


 

 

허형만 시인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르지 읽고 쓰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시인은 언어의 바깥에 있다"고 말했지만

순간순간이 신비롭고 놀랍기만 한 시간의 무늬 속에서

불량쇼처럼 시 쓰기의 실천은 또 얼마나 고독한 일인가.

 

계간 『시와 산문』 2021년 여름호에서

 

 


 

허형만 시인

1945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 중앙대 국문과와  성신여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73년《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속에 쭈그려 앉아』, 『공초』,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무기가 없다』 등과 시선집으로 『새벽』, 활판시선집 『그늘』 등과 평론집으로 『시와 역사 인식』, 『영랑 김윤식 연구』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우리문학작품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목포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