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우 시인 / 다시 친구에게
사람이 남들을 티없이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렇지만 그대 지금까지 늘 빈손일 뿐이고 오직 하나 숨어서 사랑하는 재주밖에 가진 것이 없으니, 그대 팔을 벌려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비겁과 허세와 교만과 질투가 어울려 함께 살고 그 위에 얼음처럼 깔린 미움과 비웃음과 헐뜯음이 함께 살고 있을지라도 그대 그것들마저 모조리 사랑해버리게나. 그것들마저 모조리. 언젠가는 그대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의 잘나고 못난 사람들 이름도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가겠지만, 그대의 올곧은 사랑만은 끝날까지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을 터이니까
《그대의 하늘길》창비.1987
양성우 시인 / 먼 그대
안타까워라 먼 그대 나 여기 바다 건너 가슴 조이며 발돋으며 바라느니 그대에게 단 하나의 소유이고저 세상의 그 무엇이 영원하랴마는 그대의 굳은 언약 저승까지 가리라 믿으면서도 나 때로는 도리질함은 염려도 사랑인 까닭인가
양성우 시인 / 아무도 산 위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가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바닥에서부터 오르는 법이다 때로는 돌에 걸려 넘어지고 깊은 수풀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느 골짜기나 다 낯설다 그렇지만 우연히 선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가는 곳이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아득히 멀고 큰 산을 오르기 전에는 낮은 산들을 오르고 내림은 당연하다 아무도 산 위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곳에 오른 뒤에는 또다시 내려가는 길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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