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박용진 시인 / 도색의 세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5.

박용진 시인 / 도색의 세계

 

 

네, 라는 말로 얼음이 녹았다

 

공기를 쥐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뜨거운 기운은 금세 퍼지지

 

바다를 건너와선

땀땡*

이 곳은 공식적으로 매매하기 어려운 미끌거리는 세계

 

얇은 뱃가죽의 아이들 손엔 희미한 손금

 

시간마다 바뀌는 낯선 체액은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문양으로 남아

 

색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다고 한다

 

그냥 숨을 크게 들이켠다

 

*유사 성행위의 태국어

 

시집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천년의시작, 2021) 중에서

 

 


 

 

박용진 시인 / 닫힌 창을 스치는 바람에

 

 

나의 죄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세계를 불태우는 동안 잔해의 목록은 두 손에 오래 남아

 

바람에 커튼은 하염없이 흔들리고 부서진 탁자 밑으로 증폭하는 아이의 울음

소모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며 밤마다 쓰던 망명 신청서를 꺼낸다

 

당신은 누군가의 아이

 

모자이크 처리를 해도 거울엔 기운 표정이

 

생각과 영혼은 진동수가 다른가 봐

 

천장 교미하는 쥐 소리와 주정뱅이가 떨군 걸음이 어른거리는 창을 뒤로 두고 목을 매단 거실에서 발버둥은 계속일 거고

 

무너지기 바빠 언제나 바깥이던

이런 곳이 있었다

 

왜 나를 닮아가는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은

 

시집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천년의시작, 2021) 중에서

 

 


 

박용진 시인

경북 안동 출생. 2018년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천년의시작, 202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