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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지월 시인 / 꽃잎이여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7.

서지월 시인 / 꽃잎이여

 

 

한 세상 살아가는 법

그대는 아는가.

물빛, 참회가 이룩한

몇 소절의 바람

옷가지 두고 떠나는 법을

아는가.

 

눈물도 황혼도

홑이불처럼 걷어내고

갓난 아기의 손톱같은

아침이 오면

우린 또 만나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꽃이 피는 것과 소유하는 일이

서로 반반씩 즐거움으로 비치고 있는

그 뒤의 일을

우린 통 모르고 지내노니

 

흉장의 일기장 속

꼭꼭 숨은 줄로만 아는

풀빛, 그리울 때

산그림자 슬며시 내려와 깔리는 법을

아는가.

 

눈썹 위에 눌린 천정을 보며

아들 낳고 딸 낳고

나머지는 옥돌같이 호젓이 앉았다가

눈감는 법을

그대는 아는가.

 

 


 

 

서지월 시인 / 강물과 빨랫줄

 

 

오늘도 어머니는

강물을 훔쳐 와

한 자락씩 줄에 너신다.

누런 호박오랭이 썰어 말리듯이

 

햇빛은 항시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지만

얼굴 없는 바람은

부뚜막 위에서 불고

장독대를 넘어와

어머니의 허이여신 머리칼 위에도

분다.

 

하늘과 땅 그 크낙한

화해를 위해

세상의 이쪽과 저쪽의 분별(分別)을 위해

두 귀 바지랑대는

생명의 줄을 튼튼히 받치고 있다.

 

천년풍우 그 어느날에도

우리의 제기(祭器), 제기(祭器) 같은 것.

 

먼 산 그리메 숱한 메밀밭 위으로

낮달이 조을고

젖은 빨래의

그 휴식(休息)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파란 하늘은 아득히 멀고

나는 왠지 눈물이 핑 돈다.

 

 


 

 

서지월 시인 / 일송정과 해란강

 

 

해란강 누이가

일송정을 올려다 보며

`오라버니, 하늘이 너무도 맑아요!’

하니, 일송정 오라버니는

`누이가 비치고 있는 치마물결

역시 너무나 곱네!`

하며, 둘이는 온종일

정다운 오누이가 되어 있었다

 

 


 

 

서지월 시인 / 三兄弟 江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삼형제 강!

서으론 압록강, 북으론 송화강

동으론 두만강이다

백두산할아버지는 압록강과

송화강 두만강 삼형제를 길러

길이길이 백의민족 역사

뻗어가라고 잘 길러 내었지

그 강가에서 목 놓아 울기도 했으며

말 달리기도 했건만

아버지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

어디로 가 엎드리었고

들풀만 돋아나 아우성같이

흔들리고 있는가

금 그으며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짓

힐끔 내려다보곤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구름송이

그 어느 것에도 마음 달래 수는 없었다

 

 


 

 

서지월 시인 / 백도라지꽃의 노래

 

 

내 마음 알리 뉘 있으리

말(馬)은 천리를 가고 물은 만리를

흐른다 하나, 길을 가다가

客死한 사람들의 발자국 이미 지워진지 오래

무덤 위에 핀 무덤꽃같은

흰옷 입고 입 맞추는 바람꽃 같은

내 마음 속 깊은 뜻 뉘라서 알리

오직 말 못하는 죄 하나로

코 박고 살아도 지나간 천년의 세월

서럽다 생각하기 전에

꽃대궁 밀어올려 말없는 잠

長天에 풀어내는 것을

어이타 나를 두고 떠나시는가

어느 집 문간에는 적막을 깨뜨리는 哭소리

차마 투정하듯 바라볼 뿐이네

 

 


 

 

서지월 시인 / 신 귀거래사(新 歸去來辭)

 

 

꽃은 피어서 무색하지 않고

바람은 불어서 가면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 옷자락 끝에도

풋풋한 인정은 피어나고

새소리에 귀 열리나니

 

오, 하늘 아래 해와 달 별들이

늘 곁에서 무병장수 빌어주나니

 

숲이 우리들 식탁인 것을

흙이 우리들 양식인 것을

 

구름 떠 오면

늘 그대로인 청산이

반가운 손님 맞이하듯

 

훈훈한 돌의 향기와

흐르는 물소리의 여운이

피 맑게 해 주나니

 

벗이어, 한 바가지의 물

버들잎 띄워 천천히 들이키듯

우리 목 축이며 살아가세

 

 


 

 

서지월 시인 / 한국의 달빛

 

 

쟁반 위에 놓여져

床을 받치고

더러는 바람부는 청솔가지 솔잎 사이로

물소리 흩뿌리는 수작을 걸면서

억겹 산을 넘어

지름길로 오는구나.

 

玉돌이야 갈고 닦아 서슬이 푸른 밤

싸늘한 바위 속 어둠 밝히며

쟁쟁쟁 울려오는 은쟁반 소리

은쟁반 위의 거문고, 바람이 훔쳐내는

나의 파도소리…….

 

옛날엔 이런 밤 홀로 걸었노라.

걸어서 거뜬히 몇 십리도 갔노라

짚세기 신고 돌담길 세 번쯤 돌아

모시적삼 남끝동 임을 만나고

수줍어 돌아서는 강물도 보고

손 포개고 눈 포개고 달빛 또한 포갰노라.

 

창망히 멀어져 간 수틀 위 꽃밭과

애달피 구슬꿰는 피리소리가

시렁 위에 얹혀서 돌아올 때면

쑥꾹쑥꾹 쑥꾹새는 숲에서 울고

칭얼칭얼 어린것은 엄마품에 잠든다.

 

 


 

 

서지월 시인 / 비슬산 참꽃

 

 

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 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 난 듯 큰일 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산천초목

얄리얄리 얄랴셩 얄랴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물 들었었지요

 

 


 

서지월 시인

1955년 대구 달성에서 출생. 대구대학교 국어교육 학사. 1985년 《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가 당선 되어 등단. 시집으로 『江물과 빨랫줄』,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백도라지꽃의 노래』,『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등이 있음. 현재 대구시인학교, 한중문예창작대학 지도시인. 2002년 중국 장백산문학상 등을 수상.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공동의장.  남서재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