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雲 한경희 시인 / 울 애기 (축시)
인류의 행복함 속에 당당히 하나임을 알리는 아장아장 울 애기
막 피어나는 목련처럼 천지를 소리 없이 환하게 감싸 안는 함박눈처럼
슬픈 이와 아픈 이를 위해 햇살 같은 배려와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으로
사나운 폭풍우가 몰아쳐도 갑주를 한 개선장군처럼 큰마음 환한 웃음 잃지 말며
빛이 되고 소금 되어 온 세상을 향해 내 딛는 행복한 나날이 될지어다
= 첫돌 맞은 손자를 축하하며 2012년 3월 24일 아침에 할머니 씀 =
素雲 한경희 시인 / 맏며느리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보람 있어 행복이었고 축복이었네
생 노 병 사 이것은 누구라도 겪는 법
거대한 우주 앞에 한낱 미물인 우리가 어찌 제 맘대로 살 수 있을까
흐르면 흐르는 대로 쌓이면 쌓이는 대로 우주 속에 묻어 버리면
부끄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데 왜 그리 수선 이었나
이제와 생각하니 슬픔이 행복이었고 억울함이 희망이었던 것을.........
素雲 한경희 시인 / 백두산 천지
이웃나라 속박의 한(限)인가 오갈 수 없는 장벽의 슬픔인가
한발도 내 딛기 두려웠던 안개 속 후두둑 흩뿌려준 빗줄기와 우박
유월의 겨울은 가히 감당키 어려워 어찌 그리도 베일 속에 가리운 채 들어내고 싶지 않았나?
정상에 오르니 밝은 햇살에 이토록 고요하고 맑은 모습 이었구나
넓은 가슴으로 온기 품어 네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처럼 포근한 사랑 내 형제에게 전해다오
= 2007년 6월 천지를 보면서 =
素雲 한경희 시인 / 박 꽃
어둠이 내려앉을 이른 저녁 초가지붕 위에 새하얀 박꽃
산들 바람 귓가를 스치며 하얀 나비 같은 날개 짓 춤추는 모습이 아름다워
순백의 찬란한 황홀함 몽롱하게 꿈속을 헤매다가 숨 막힌 넋은 이미 소풍가고
훨훨 날아간 내 동생 모습 같아 아린 가슴 감싸 안으며 부신 눈 조용히 감아 보네
素雲 한경희 시인 / 삶
죽을 만큼 아파 보니 삶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죽을 만큼 아파 보니 우주만물의 위대함을 알았습니다
죽을 만큼 아파 보니 차창 밖 실바람에 나부끼는 갓 틔운 나뭇잎새의 속삭임도 들립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위로도 들리며 스쳐가는 낯모를 이들의 사랑도 느끼고 똘망똘망 사슴의 눈망울 가진 어린아이의 기도 소리도 들렸습니다
나에게 모두 무관심한 줄 알았는데 너무도 달콤해 삶에 용솟음치며 너무도 따뜻해 언 몸 녹여줍니다
죽을 만큼 아프고 나니 그 동안의 삶이 부질없었음을 이제나마 알 것 같습니다
素雲 한경희 시인 / 욕심
나는 당신의 전부를 다 갖고 싶습니다
즐거워 웃는 모습 아파서 우는 모습 슬퍼서 괴로운 모습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 차갑고 냉정한 모습 일이 안 풀려 화내는 모습 당신의 그 어떤 모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갖고 싶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 말고 어머님의 연인이 되어야 하고 형제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당신을 아는 많은 이들의 애인이 되어야 함을 나는 알고 있기에 당신을 세상에 보내 드립니다
그러나 알뜰한 사랑만은 나 이어야 합니다
素雲 한경희 시인 / 친구 (2)
조금은 거친 듯 해도 곱고 여리며 너무 강하여 매정해 보이나 귀여운 고백을 할 줄 아는 친구!
다른 이들의 고통과 힘든 모습도 지나쳐 버리기엔 많이 아파하며 깊은 속 털기 어려워 눈물 삼키는 친구!
내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할 때 오십여년을 한결같은 뜨거운 맘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공유하는 친구!
큰 목소리가 남성적으로 보이나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가끔 작은 한숨 배어 나오면 아! 말하기 힘든 일이 있나 보다 짐작하고 나는 너의 소중함을 느끼고 또 느끼며 이 밤도 그리움에 떨며 너를 불러 본다
친구! 친구야.........!
素雲 한경희 시인 / 뼈에게
방사선 치료 후 가문 땅 갈라지듯 한 살갗 피 흐르던 그 때에도 꿋꿋이 잘 지탱 해 주던 너 아! 이제 지쳐 쓰러졌구나 조용한 아침 고막을 찢어놓던 너의 절규 딱.............
쇄골아 미안해 이십 수년을 예쁜 네 모습 꽁꽁 숨기고 이젠 붙일 수도 붙을 수도 없어 침묵해야 하는 네 슬픔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마라 신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내가 네 옆에 꼭 있어 줄께........
素雲 한경희 시인 / 기후변화
대지엔 찬 서리 내린 것만큼의 싸락눈이 내렸는데 소복한 함박눈은 보이지 않네
아마도 내리려다 그만 몸살을 앓는 모양인가 무지목매 인간들의 오류로 기후변화가 원인이 되었는가
양지쪽 찔레나무 새순 틔웠으니 우리는 자연에 어찌 속죄할까 소중한 자연을 훔쳐버린 우린 후손들에게 어찌 얼굴 들까
어제도 오늘도 끝일 줄 모르고 내뿜는 희뿌연 매연 속을 뚫고 자동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
아마 내일도 그러하리니 어찌하면 좋을 고 어찌하면 좋단 말인 고........
= 2011년 겨울 산을 등반 하면서 =
素雲 한경희 시인 / 월정사
까치와 함께 벗 삼아 스스로를 땡초라 낮추는 스님
오신 불자들에게 함박웃음 건네주는 고추
아직 땅바닥에 붙어 절절히 구애하는 오이
아욱과 익모초의 연주에 사르르 춤을 추며 촉촉한 눈인사 하는 감 잎새
각자의 사연에 멍든 마음들 작은 법당의 정숙한 향연에 밝은 웃음 희망 열리네
素雲 한경희 시인 / 지하철
서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모두가 손에는 휴대 전화
무슨 사연들이 그리 많은지 얼굴 붉히며 고함지르는 사람
오래만의 소식에 반가워 웃고 떠드는 사람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
각양각색의 숱한 사연들을 지하철은 말없이 실어 나른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성만 시인 / 조르바 (0) | 2021.10.07 |
---|---|
김광호 시인 / 사랑의 입양 (0) | 2021.10.07 |
서지월 시인 / 해란강에 와서 외 8편 (0) | 2021.10.06 |
강인한 시인 / 불은 내게 묻는다 외 4편 (0) | 2021.10.06 |
남성희 시인 / 산길 (0) | 2021.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