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기 시인 / 저녁 산책 - 어린 고향에
그리움을 그리면서 고독은 자라는 것 얼마나 그리웠던 길을 잃은 고독인가 가는 달 혼자서 보는 눈빛 젖는 내 하루
그리운 시간은 또 얼마나한 복락인가 넘치도록 적막함은 눈물 젖는 기쁨인 것 넉넉한 말씀의 향기 산에 들어 취하는 날
돌샘에 잠긴 달을 보네 이 산의 깊은 가슴 맑아서 더욱 아파라 하 무거운 산의 침묵 저녁 새 산등을 넘네 새파랗게 별이 뜨네
《시와함께》 2021. 봄호
홍진기 시인 / 지귀꽃 변주
양반 댁 후실을 닮은 자귀꽃 만개 한다 닫아서 더욱 부푸는 속가슴 얼비치고 주고도 넉넉한 사랑 목덜미가 희어라
홀로된 누님을 닮은 자귀꽃 비 맞는다 갈가리 찢어진 가슴 앞섶에 흐르는 눈물 청춘을 톱아낸 사연 살몸 이리 아파라
홍진기 시인 / 낙엽을 쓸며
혀끝에 감겨드는 녹차의 여운 같은 봄처럼 피어오른 여인의 향기 같은 안으로 익는 살내음을 나는 알고 있는가
해마다 이맘때면 무심히 뜰을 걷다 버릇되어 쓸쓸하게 낙엽을 쓸지마는 참말로 쓸어야할 것을 나는 쓸고 있는가
홍진기 시인 / 황노인의 죽음 – 개표 마치고
알람시계 그 재난의 하루가 우는 아침 바람 빠진 리어카에 폐지 뭉치 풀어놓고 등줄기 굽은 계단을 말없이 오르더니
가난도 죄가 된다며 허한 웃음 흘리면서 촉수가 낮은 외등 불이 꺼진 그믐밤도 무늬만 찬란한 도시에 꿈을 안고 버티더니
못된 것들이 살을 맞아 결빙이 풀리겠다며 종마처럼 달리다가 곰처럼도 춤추더니 마지막 일수를 찍듯 마침표를 찍고 갔다.
홍진기 시인 / 가을 단상(斷想)
달빛에 난타 당한 감나무 잎이 지네
서럽도록 가냘프게 풀벌레 숨어 우네
풀었다 감기는 소리 달빛보다 시리네
홍진기 시인 / 꽃비
실연을 먹지 않은 내 시는 부실不實하고
추위를 모르고 핀 꽃은 마냥 싱겁더라
눈물은 그래서 짜고 꽃은 연년 향그러워
가슴에봄을 품으니 소매 끝에 향이 돌아
산머리에 도는 구름 설마 혼자 왔을라고
봄비가 찍어놓은 자리 자국마다 꽃이더라
<<배나무 없는 배나무실>> 경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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